국내 첫 전동킥보드 대여 서비스 ‘킥고잉’을 운영하는 ‘올룰로’의 최영우 대표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올룰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최근 2~3년 사이 도로 풍경을 가장 많이 바꿔놓은 교통수단은 단연 전동킥보드다. 어린이들의 장난감 혹은 레저용 기기로 주로 사용되던 킥보드는 이제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쓰는 일상적 교통수단으로 여러 나라에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걷기엔 멀고 택시 타기엔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 사람들은 도로에 흔히 깔린 킥보드를 이용한다. 복잡한 도로에 새 이동수단이 끼어드는 모습에 반감을 갖거나 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 전동킥보드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최영우(45) 대표가 2018년 창업한 올룰로(olulo)의 ‘킥고잉’이다. 지난 22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16년 동안 자동차회사에 다니며 했던 고민을 바탕으로 역설적이게 자동차가 아닌 교통수단을 발굴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말고도 다양한 이동수단이 도로에서 조화롭게 어울려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다는 최 대표를 만나, 그가 꿈꾸는 도로의 미래 모습을 물었다. 킥보드 업계의 생사가 걸린 최근의 헬멧 규제 의무화법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국내 첫 전동킥보드 대여 서비스 ‘킥고잉’을 운영하는 ‘올룰로’의 최영우 대표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올룰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고민이 전동킥보드 사업의 토대
포항공대와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최 대표가 모빌리티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2002년 전문연구요원으로 현대모비스에서 근무하면서였다. 킥보드를 사업 아이템으로 잡게 된 이유를 묻자 최 대표는 일본의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가 쓴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이라는 책 이야기를 꺼냈다.
“‘자동차는 과연 인간을 편리하게만 하는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많은 사람은 자동차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는데 자동차가 늘기만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1970년대에 나온 책이지만 전체 맥락에서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동차가 유발하는 문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죠. 현대자동차에서 커넥티드카를 연구하면서 자동차 이용자들의 편리함을 높여주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현대차 내비게이션에 음성인식 기술을 적용한 것이 제가 기획했던 프로젝트였어요. 동시에 자동차로 인한 불편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며 남들보다 자동차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자동차 대안으로 전동킥보드를 떠올린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카페에 앉아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어느 날, 눈앞에 전동킥보드 두 대가 휙 지나가는 걸 보고 번뜩였다고 했다. “일단 재미있어 보였어요. 직접 타보니 자전거의 단점을 보완하는 교통수단으로서 가능성도 보였고요. 자전거는 안장 높이가 안 맞고, 여성 이용자들은 치마를 입었을 땐 타기가 어려운 불편함이 있지만 킥보드는 이런 불편함을 충분히 해소하는 단거리 이동수단이 될 것 같았거든요. 자전거보다 공간도 덜 차지하니까 한국처럼 공간이 협소한 도시에 적합하고요. 레저 수단을 넘어서는 이동수단으로서 전동킥보드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8년 초, 16년간 일했던 현대자동차를 퇴사한 뒤 올룰로 창업을 본격 준비했다. 창업을 오랫동안 꿈꿨던 터라 현대차 재직 시절 사내 벤처에도 참여했었지만 킥보드 사업은 퇴사 후 시작했다. “킥보드를 이동수단으로 쓴다는 생각을 하긴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관련 사업을 하는 곳도 없었고요. 자동차회사의 아이템으로는 조금 이른 것 같았죠.”
사업 파트너로 삼기 위해 경기과학고등학교 동창이자 당시 우아한형제들 연구실장이던 이진복씨(현 올룰로 최고기술책임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진복씨 합류 이후 ‘올룰로’라는 사명도 만들었다. 발음도 쉽지 않은 올룰로(olulo)는 이동수단을 형상화한 상형문자다. 두 바퀴 이동수단을 타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두 바퀴를 헤드라이트로 보면 자동차 앞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올룰로가 운영하는 전동킥보드 브랜드 ‘킥고잉’. 올룰로 제공
2018년 9월, 올룰로의 전동킥보드 대여 사업 ‘킥고잉’은 새로운 서비스 받아들일 준비가 된 젊은층이 많은 서울 강남과 마포에서 출발했다. 최 대표는 킥고잉의 목표를 “도시의 단거리 이동을 자동차에서 킥보드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자동차 이동을 들여다보면 5킬로미터 미만의 짧은 이동이 절반 가까이 차지합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육중한 차가 필요하고, 차가 없으면 불편을 느끼는 도시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자동차가 너무 많아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시장을 개척한 사업자로서 어려웠던 점은 이동수단으로써 킥보드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첫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벤처투자자들조차도 킥고잉 시작 당시엔 전동킥보드 사업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길에 오토바이가 다니는 것도 싫은데 킥보드까지 더해지면 안 된다. 정말 싫다’ 이런 말까지도 하더군요.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모두 싫고 도로에는 차만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기성세대, 자동차 운전자들의 인식이죠. 이런 생각이 전동킥보드를 이동수단을 정착시키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출범 3년째 킥고잉은 현재 서울 18개구와 경기·인천 7개 도시에서 킥보드 2만대를 운영하고 있고 회원 수는 100만명을 넘었다. 2030 남성이 주 이용자 층이지만 점점 여성과 4050 세대로 확대되고 있다. 교통수단으로서 전동킥보드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형태는 대중교통을 통한 이동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라스트마일 이동이 대부분이다. 배민 커넥트나 쿠팡 플렉스 등 크라우드소싱 방식의 음식 배달 일을 할 때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킥고잉 출시 이후 씽씽, 알파카 등 후발주자 업체들도 속속 생겼고 라임이나 빔, 뉴런 등 해외 업체들도 한국 시장에 하나둘 진출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국내에서 업체들이 운영하는 전동킥보드는 9만1028대로, 2019년 12월 1만7130대, 지난해 10월 5만2080대에 견줘 짧은 시간에 빠르게 늘었다. 이용 건수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3~8월 6개월 동안 1519만건이던 누적 이용횟수는 지난해 9월부터 지난 2월 사이엔 2430만건으로 60% 증가했다.
국내 첫 전동킥보드 대여 서비스 ‘킥고잉’을 운영하는 ‘올룰로’의 최영우 대표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올룰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달 13일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전동킥보드 업체들로선 넘기 어려운 환경 변화다.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이 법이 시행된 직후 킥고잉을 포함한 킥보드 업체들의 이용률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용요금이 업체들의 주 수익원인 터라 이 제도가 계속되면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에 킥고잉 등 14개 킥보드 사업자들이 모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퍼스널모빌리티산업협의회(SPMA)는 한목소리로 헬멧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한국의 도로체계는 ‘자동차 우선’에서 ‘보행자 우선’으로 방향 전환이 진행 중이었다. 이런 가운데 전동킥보드가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등장하면서 도로교통 법제 논의는 보다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생겼다.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 등 다양한 개인형 이동수단(PM)의 안전한 이용을 위해서는 헬멧 착용뿐만 아니라 보다 종합적인 안전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전거 도로 확충, 안전성이 확보되는 바퀴 크기 규제 등 여러 요소를 폭넓게 고려해야 하는데, 현재는 헬멧 착용 의무화 만에 집중해 논의가 협소하게 이뤄지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또 한국보다 앞서 전동킥보드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며 혼란을 먼저 겪은 미국, 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의 경우 헬멧 착용 의무는 청소년에게만 지우고 성인에게는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안전 규제와 관련해 최 대표는 “현실성을 고려해 달라”는 논리를 폈다. “전동킥보드 업계가 헬멧 착용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외처럼 청소년은 의무, 성인은 선택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킥보드의 이용 행태, 자전거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업체들의 전동킥보드는 시속 20㎞ 수준으로 속도를 제한하는 등 전기자전거와 비슷하게 달리고 있는데, 전기자전거엔 권고사항인 헬멧 착용이 킥보드엔 위반 시 범칙금 2만원으로 강제되는 것은 지나치다는 말이다. 또 업체들이 킥보드에 헬멧을 비치했을 때 실제 착용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3%에 불과한 등 헬멧 비치, 의무화가 실제 착용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최 대표는 “전방의 보행자를 인식해서 사람이 많은 길을 갈 때는 경고를 하거나 킥보드의 속도가 제어되는 등 기술로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첫 전동킥보드 대여 서비스 ‘킥고잉’을 운영하는 ‘올룰로’의 최영우 대표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올룰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도시에 꼭 필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현재의 도로와 제도는 교통수단으로서 전동킥보드를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킥보드에 ‘킥라니’(킥보드+고라니)나 ‘도로의 무법자’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어디서 어떻게 타야 할 지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인 탓이 크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제도적인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킥보드 서비스가 빨리 나온 게 맞다”면서도 “제도나 인프라는 늘 산업보다 느리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프라와 제도도 함께 바뀌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꼭 전동킥보드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자동차와 보행자만 다니던 길에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당연히 불편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교통수단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목소리는 과거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선 ‘붉은깃발법’을 만들어서 자동차의 속도 등 통행을 통제했죠. 결국 자동차는 가장 보편적인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요. 처음부터 모두가 자동차에 열광하진 않았지만 도시와 타협하고 변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착했듯, 전동킥보드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전동킥보드를 수용할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저는 그 과정에서 킥보드가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킥보드가 도시에 필요한 이동수단이라는 확신이 있거든요.”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