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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문송합니다” 할 필요 없는 IT 기획자, 어떤 일? ‘도그냥’이 알려줄게요

등록 2021-09-06 04:59수정 2021-09-06 11:18

‘MZ세대의 랜선 사수’ 이미준 지그재그 매니저
‘도그냥’이 말하는 IT 기획의 핵심 역량 “이유를 잘 찾아야”
이미준 지그재그 프로덕트 매니저. 이미준씨 제공
이미준 지그재그 프로덕트 매니저. 이미준씨 제공

정보기술(IT) 산업은 최근 3∼4년 사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만큼 인력 수요도 크게 늘었다. 올 초에는 개발자를 구하지 못해 업계 전체가 인력 대란을 겪었다. 아이티 기업에는 개발자만 있는 게 아니다. 개발자와 짝을 이뤄 일하는 기획자(PO, PM)도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이들 직군 역시 개발자 못지않게 인력난을 겪고 있다. 코딩을 할 줄 몰라도, 문과생도 고성장 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직군이라 최근 문과 출신 취업준비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아이티 회사 기획자란 어떤 직업일까?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 운영사 카카오스타일에 재직 중인 유명 기획자 ‘도그냥’ 이미준(35)씨를 지난 3일 줌 인터뷰로 만났다.

이씨는 2011년 롯데그룹 마케팅 부문으로 입사해 기획업무에 자원하면서 기획자 경력을 시작했다. 9년8개월 동안 엘(L)롯데, 롯데닷컴, 롯데온을 만들었고, 지난해 10월부터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티 기업 기획자’로 불리는 이씨의 직무를 더 정확히 표현하는 말은 ‘프로덕트 오너(PO)’ 혹은 ‘프로덕트 매니저(PM)’다. 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회사 내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협업해 문제를 풀어가는 일을 주도하는 자리다. 한국에서는 사업 일정을 관리하는 이들을 기획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쏟아지는 일을 정리하는 ‘워터폴(폭포수) 방식’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비즈니스 매니저’ 혹은 ‘프로젝트 매니저’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단순히 아이티 서비스의 화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서비스가 나아갈 방향을 보다 멀리 보고 정하는 사람입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목표를 세운 뒤, 개발자, 디자이너, 영업 마케팅 담당자, 법무·재무 담당자 등 회사 내 거의 모든 사람과 소통하며 일을 하죠. 기존의 제조업 회사에서는 사업 계획, 법무 검토, 실제 진행 과정이 모두 분리되어 이뤄졌지만, 아이티는 이처럼 진행 단계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서비스가 운영되는 내내 회사의 모든 구성원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외부에서는 이과생 개발자가 눈에 띄지만, 실제 아이티 회사에서는 상당수 직군에서 문과생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씨가 지그재그에서 담당하는 영역은 상품, 주문, 클레임이다. 3가지 프로덕트 팀에 속해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플랫폼을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법을 찾는 일이다. “개발자, 디자이너와 한 팀으로 일하고 있어요. 기획자가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지 목표를 제시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구조로 돌아가죠. 예를 들어 상품 부분을 개편한다면, 더 다양한 상품을 등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거나 등록 절차를 편리하게 만들도록 화면을 개선하자는 방향을 잡을 수 있고요. 판매 데이터가 관리되는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바꾸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3일 <한겨레>와 줌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미준 지그재그 프로젝트 매니저. 줌 화면 갈무리
지난 3일 <한겨레>와 줌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미준 지그재그 프로젝트 매니저. 줌 화면 갈무리

아이티 기업이 말 그대로 폭풍 성장하면서 기획자 직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개발자 대란 못지않은 기획자 인력난도 진행 중이다. 이씨는 기획자 직군의 현 상황을 ‘좋은 선배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제 윗세대 선배들은 ‘회사에 와서 어쩌다 보니’ 기획자 일을 한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직무로 자리를 옮기죠. 기획자 경력을 꾸준히 쌓은 사람이 없으니 지금의 복잡한 이커머스 서비스를 잘 만들 사람이 없어요. 회사는 기획자가 필요해서 주니어 직원을 뽑지만 이들을 이끌어줄 사람이 없죠. 개발자와 무리 없이 소통하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회사들은 기획자가 없다고 난리이고, 그렇다고 아무나 뽑을 순 없으니 취준생들은 자리가 없죠.”

기획자가 되고 싶지만 정보가 부족해 방법을 모르던 기획자 꿈나무들은 이씨의 ‘도그냥의 서비스 기획 스쿨’ 강의에 열광했다. 이 강의가 인기 얻으면서 이씨는 ‘엠제트(MZ)세대의 랜선사수’라는 별명도 생겼고, 지난해 ‘현업 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 기획 스쿨’ 책도 냈다. 조만간 아이티 회사에서 문과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하는 두 번째 책도 나올 예정이다. 이씨가 생각하는 기획자의 필수 역량은 “이유를 잘 찾는 것”이다. “불편함을 잘 찾아내면 기획 감각이 좋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편함을 찾는 데서 머무르면 안 됩니다. 실제 일을 해보면 불편한 프로덕트가 나오게 된 이유가 있거든요. 시스템, 회사 상황, 사업상 고려 등 다양한 제약 조건을 염두에 두다 보면, 차선을 만들어야만 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러니 어떤 프로덕트를 보고 '왜 이렇게 됐을까?' 이유를 되짚어보는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걸 잘해본 사람이 기획도 잘할 수 있고, 개발자에게 이런 이유를 많이 물어봐야 나중에 개발자와 소통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이씨가 기획자로서 이루고 싶은 앞으로의 목표는 두 가지다. 우선 내년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커머스 지식을 모두 문서화해서 도움이 필요한 후배들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다. 이후에는 ‘한국의 서비스 기획자’의 표상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마케터는 트렌디하다’는 이미지처럼, ‘기획자는 다면적 고려를 바탕으로 문제의 해법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식의 직업적 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말이다.

“롯데에서 일할 때, 저는 서비스기획 직군의 가장 높은 공채 선배였어요. 어느 날 한 후배가 ‘제 움직임을 보고 후배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가늠해본다’고 하더군요. 그저 내 일을 하는 것이 누군가의 선례가 될 수 있구나, 책임감을 처음 느꼈어요. 또 한 가지 계기는 업계에 한때 떠돌던 ‘기획자 무용론’입니다. 복잡한 프로덕트를 가진 회사에서 일을 해보니 기획자는 아이티 회사에 없어선 안 될 존재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기획자는 필요 없다는 일부의 주장 때문에 주니어 후배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봤죠. 후배들이 기획자라는 직무에 자부심을 갖고, 혼란스럽지 않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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