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케이텔레콤이 연내 출시 예정인 ‘인공지능 전화’ 기능을 둘러싸고 불거진 엿듣기 또는 개인정보 침해 논란에 대해 개인정보처리 방침 보완에 나선다. 그러나 정보인권단체 등은 통화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보완 방안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유영상 에스케이텔레콤(SKT)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에스케이텔레콤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 사업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 제공
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는 10일 “인공지능 전화 기능 출시 때 에이닷 개인정보처리방침에 통화 녹음 파일뿐 아니라 이를 텍스트로 변환한 파일도 서비스 제공 뒤 서버에서 즉시 삭제한다는 내용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녹음 파일만 서비스 제공 뒤 삭제한다는 내용이 담긴 현재의 개인정보처리 방침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이와 함께 이 회사는 “녹음 파일과 텍스트 파일을 서버에 저장하기에 앞서 암호화 처리를 거치기 때문에 에스케이텔레콤이 통화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설명도 내놨다.
앞서 에스케이텔레콤이 인공지능 전화 출시 계획을 밝힌 뒤 엿듣기 혹은 개인정보 침해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사용자의 통화 상대방으로부터 명시적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양 쪽 통화 내용을 인공지능이 분석하는 건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고 인공지능 혹은 사업자가 사실상 통화 내용을 엿듣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인 것이다.
논란이 일자 정부 당국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은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나 “인공지능 같은 소프트웨어라고 해서 법을 뛰어넘을 수 없다. 동의 절차도 명시적이고 자발적인 수준이어야 한다”면서 “디지털 신질서 차원에서 중요하게 다뤄봐야 할 사안이다.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이 개인정보처리 방침 보완에 나서기로 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보인권단체들은 암호화 및 삭제는 사후 조처일 뿐, 통화 녹음 및 텍스트 변환 파일이 통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서버에 잠시라도 저장된다면 이런 사실을 정보 수집 단계에서부터 통화 참가자 모두에게 명확히 알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음성파일을 텍스트로 변환해 암호화하고 서비스 제공 목적이 다 한 뒤엔 삭제한다고 해도, 잠시라도 통신사의 서버를 거쳐 간다면 통화 참가자 쌍방에게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신기술의 정보인권 침해 가능성이 법적 회색지대에 놓인 만큼 행정·규제 당국의 적극적 법 해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현행법이 허용하는 통화 당사자의 녹음 행위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만나면 개인정보 침해가 더 용이한 형태로 바뀔 위험 또한 커질 수 있다”며 “새로운 위험을 다룰 새로운 규율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통화 녹음 파일과 텍스트 변환 파일을 수집한다는 사실을 통화 상대방에게 알림음 등으로 알려주는 기능에 대해선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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