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일 그만두면 전화만 되는 폰을 쓰고 싶어요.”
“인공지능(AI) 밥솥을 사 놓고 며칠은 쓰지 못했어요.”
노인에게 기술은 여전히 멀리 있는 듯하다. 한겨레가 지난 14~16일 60~70대 노령층 남녀 6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공통적으로 첨단기술이 장착된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시도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디지털 기기 사용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지레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답변도 있었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삶에 새로운 기회와 편리함을 준다는 걸 ‘머릿속’으론 이해하지만, 이런 발전에 스스로가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개인택시 기사 김아무개(70)씨는 20대 후반 직장인 딸과 경기 하남시에 산다. 김씨는 기술 발전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4년 전 보이스피싱 사기 경험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전자제품 구매에 66만원이 결제됐다. 계좌가 해킹됐다’는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시키는 대로 은행으로 택시를 몰았다. 혹시 몰라 중간에 파출소를 들른 덕분에 다행히 계좌에 든 돈을 지킬 수 있었다. 그 뒤로 김씨는 스마트폰 이용을 극도로 조심한다고 한다. “택시 콜 때문에 스마트폰을 쓰지만 택시 일을 그만두면 전화만 하는 폰을 쓰고 싶어요.”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김씨는 영어로 일일이 로그인해야 하는 게 힘들다고도 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신청도 딸과 택시조합 직원들 도움을 받았단다. “스마트폰 때문에 보이스피싱에 노출됐다”고 믿는 김씨는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 또 범죄자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나 같은 노인을 노릴 것”이라고 했다.
마아무개(66)씨는 의류 생산직으로 43년 일하다 은퇴해 남편과 둘이 서울 구로구에 살고 있다. 마씨는 ‘다른 사람들만큼은’ 디지털 기기를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계좌 이체와 같은 은행 업무도 스마트폰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홈쇼핑 상품 결제를 할 땐 ‘나이 벽’을 느낀단다. 뻔히 눈앞에 보이는 포인트 쿠폰도 포기할 때 소외감마저 든다. “자주 쓰는 은행 앱이 아니면, 사용 방식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니 겁부터 나요. 그럴 때 그냥 포기하고 말죠.”
서울 강동구에 사는 목사 박아무개(62)씨는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그런 덕택인지 박씨에게 보급형 스마트폰은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최신 스마트폰을 제대로 이용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매장에서 추천하는 최신 제품을 사서 쓰고는 있어요. 하지만 쓰기는커녕 이해도 못 하는 기능을 잔뜩 집어넣은 스마트폰보다는 실용적이고 자주 쓰는 기능만 있는 스마트폰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덮밥집을 운영하는 남편과 둘이 사는 서울 노원구의 박아무개(64)씨는 대학병원의 예약 시간을 바꾸느라 ‘챗봇’을 처음 이용해봤다가 곤욕을 치렀다. “글씨부터 너무 작아 보기 어렵더라고요. 설명이 복잡하니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챗봇이 이런저런 선택을 계속 요구하니 몇번이나 중간에 포기할까 생각했어요. 피곤했어요.”
경상남도 창원의 조아무개(61)씨는 ‘똑똑한’ 밥솥을 산 뒤 난감함을 마주했다. 무슨 이유인지 밥을 안쳤지만 밥이 되지 않았다. 결국 타지에 나가 사는 자녀들을 주말에 불러 도움을 받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애들 보기가 민망하더라고요. 지금도 (아이들이) 가르쳐준 대로 적어 놓고 잊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능은 쉽게 또 잊어요.” 조씨는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밥솥이 애물단지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전라북도 익산에 홀로 사는 최아무개(69)씨는 지난여름 태풍이 불던 날 서울행 기차표 시간을 바꾸려 기차역에 다녀왔다. 경로 할인 혜택을 받으며 결제한 표를 앱을 통해 어떻게 교환하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최씨는 “올해 추석에는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평소에는 구하기 쉽던 버스·기차표도 현장에서는 바로 구하기 힘들었다. 대합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데, 나 같은 노인과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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