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을 앞두고 정치권과 소비자단체 등으로부터 이동통신 요금을 내려 가계통신비 부담이 완화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가 나올 때마다,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알뜰폰 시장 활성화와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등을 통해 이동통신 사업자 간 요금경쟁이 촉발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혀왔다. 28㎓ 대역 5세대(5G) 이동통신 주파수 할당 결과를 주목하는 것도 이번에는 제4 이동통신 사업자가 선정돼 ‘통신3사 콘크리트 독과점’이 깨지고, 사업자 간에 이동통신 품질 고도화 및 요금 경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통신경쟁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선, 과기정통부가 이번에 28㎓ 주파수 할당에 성공해 이동통신 사업자를 한 곳 늘릴 수는 있지만, 이 사업자가 이동통신 3사 독과점 구조를 깨는 ‘메기’가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통신사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등 출신 교수와 통신업계를 취재한 바 있는 언론인 몇이 모인 송년 모임 자리에서도 이런 지적이 나왔다. 물론 ‘아직은’이란 전제가 달렸다.
모임 참석자 상당수는 “차라리 ‘만년 3위’로 간주하던 엘지유플러스(LGU+)가 이동통신 가입자 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높이며 ‘2위’ 케이티(KT)를 앞서려고 하는 지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동통신 사업자 간에 경쟁이 불붙을 수 있는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케이티와 엘지유플러스가 2위 자리를 지키고 빼앗기 위해 파격적인 요금제 출시와 이동통신 품질 경쟁에 나서면, 1위 에스케이텔레콤(SKT)도 가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과기정통부가 ‘관리경쟁’ 정책을 끝내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통신3사 콘크리트 독과점 구도에 문제를 제기했고, 총선이 다가오며 이동통신 요금인하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완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통신 3사는 독과점 구도를 기반으로 올해 전례 없는 수준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집계해 내놓은 지난 9월 기준 무선통신서비스 가입 현황을 보면, 엘지유플러스 이동통신 가입자는 1801만6932명으로, 케이티(1713만3388명)를 앞섰다. 엘지유플러스가 이동통신 가입자 점유율에서 2위 자리를 맛본 건 창사 이후 처음이다. 전년 같은 시기에 견줘, 엘지유플러스 가입자는 15.3% 증가했지만 케이티 가입자는 0.9% 증가하는 데 그친 결과다.
당연히 신경전이 벌어진다. 케이티는 “엘지유플러스의 사물인터넷 가입자가 왕창 늘어난 데 따른 착시일 뿐, 매출액과 사람 가입자 기준 점유율은 여전히 엘지유플러스를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 공식 통계에선 이런 부분이 드러나지 않는다. 더욱이 두 사업자 간에선 일시적이나마 시가총액 순위가 뒤집힌 적도 있다.
엘지유플러스는 최근 파격적인 온라인 요금제를 내놓는 등 2위 굳히기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대표 통신사를 자처해온 케이티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케이티의 반격이 주목된다. 더욱이 케이티 김영섭 신임 대표는 엘지텔레콤 출신이다.
앞서 과기정통부(당시는 정보통신부)는 1990년대 초반 미국 요구로 통신시장을 개방하며, 내부적으로 국내 기업들에 시장을 선점시켜 외국 사업자들이 ‘한국 시장에 들어가 봤자 먹을 게 없다’는 인식을 갖게 하자는 내용의 대응책을 추진했다. 통신시장을 세분화하고, 각 영역별로 3개 사업자 경쟁체제를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3개 사업자 체제가 가장 치열한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정홍식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 기자에게 전한 통신시장 개방 대응 정책 밑그림에는, 시장 성숙 단계에선 사업자별 점유율이 1위 60%, 2위 30%, 3위 10% 구도로 수렴되게 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됐다. “점유율 격차가 이 정도는 벌어져야 순위 다툼 의욕이 꺾여 과당 경쟁에 나설 엄두를 못내,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통신(당시는 이동전화) 시장의 경우, 에스케이텔레콤(011)의 신세기통신(017), 케이티에프(KTF·016)의 한솔텔레콤(018) 인수합병으로 만들어진 이동통신 3사 체제 초기에는 점유율이 이에 근접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가입자 점유율이 50%대 후반(매출 기준으로는 60% 이상)에 육박해 공정거래위원회 인가 과정에서 점유율을 50% 이하로 낮추라는 조건까지 달렸고, 케이티에프는 30%대, 엘지유플러스(019) 10%대에 머물렀다. 구본무 당시 엘지그룹 회장이 창립기념일 기자간담회에서 “‘황금알 낳는 거위’라고 해서 기를 쓰고 사업권을 땄더니 황금알은커녕 메추리알도 낳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해, 통신 사업에서 의욕이 꺾였다는 언론의 분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정보통신부 시절 밑그림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케이티는 잇단 낙하산 인사 등으로 경쟁력 저하를 자초한 반면, 엘지유플러스는 케이티 최고경영자 출신의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수장으로 영입하는 등 과감한 도전을 이어가 케이티와의 점유율 격차를 빠르게 좁혀갔다. 에스케이텔레콤이 공공연히 “장기적으로 우리 경쟁자는 케이티가 아니라 엘지유플러스”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정보통신부가 시장 안정화란 명분으로 잡은 시장성숙 단계에서의 사업자별 점유율 목표치에 견줘보면, 지금의 사업자별 점유율은 시장 안정화를 기대할 수 없는 구도이다. 이른바 ‘60% 대 30% 대 10%’대 구도가 깨지는 수준을 넘어, 2위와 3위 사업자 사이에 치열한 순위 다툼까지 벌어지게 됐다. 사업자 간에 치열한 가입자 유치 경쟁이 벌어질 수 있는 환경이 다시 만들어진 셈이다.
남은 장애물은 과기정통부의 ‘관리경쟁’ 정책이다. 단말기 지원금 제한, 과당 경쟁 금지, 약탈적 요금 인하 금지 등 사업자 간 경쟁을 제한하는 장치들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기간통신사업자로 통신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망한 사업자가 한 곳도 없다. 과기정통부의 관리경쟁 정책 덕이다. 그만큼 소비자의 몫이 줄었다는 얘기도 된다.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보다, 통신3사 중 경쟁에 밀려 주인이 바뀌는 사례가 나오는 게 더 효과적인데….” 통신사 임원 출신 한 대학교수의 진단이다. 통신사에 밉보이면 안 되니, 기사 쓸 때 인용하려면 본인과 소속 대학 이름은 익명으로 해달라는 요청이 따라왔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