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우리나라 지도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해 찬반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구글이 미국 정부를 앞세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지도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도데이터란 주소와 지역·건물명 등 지도를 구성하는 정보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상세한 지도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 사업자들도 정부 방침에 따라 지도와 길 안내 서비스 등을 제공할 때 청와대나 주요 군사시설 등의 실명과 위치를 가리고 있다. 청와대 건물과 군 주요시설 등이 드러나는 위성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마당에 국가 안보를 이유로 지도데이터 반출을 금지하는 게 온당하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정부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구글은 지난 2일 외국사업자로는 최초로 지도데이터 반출을 요구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와 동계올림픽 활성화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구글은 “클라우드 방식에서는 데이터가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분산 저장돼 서비스를 위해서는 국외 반출이 불가피하다”며 “지도데이터 반출 금지로 한국에서는 구글의 길안내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는 외국인들이 한국 방문 때 불편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내 관련 업계에선 구글이 2020년쯤 상용화할 예정인 자율주행차 서비스 준비 차원에서 지도데이터 반출 길을 트려고 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자율주행차란 컴퓨터와 센서를 활용해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운행될 수 있는 차를 말한다. 전문가들 말을 들어보면, 기술적으로는 자율주행차 사업자가 서비스를 받고 있는 차와 탑승자 정보가 실시간으로 수집되게 할 수 있다. 어디서 출발해 어느 경로를 거쳐 어디로 가고 있으며, 차에 누가 타 뭘 하고 있는지, 평소 어디를 자주 가는지 등의 정보를 수집·축적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빅브러더’의 등장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이렇게 수집되는 정보는 차량 이용자 사생활은 물론이고 안전과도 직결된다. 누군가가 악용하거나 유출됐을 때의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강력한 제도적 규제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글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대로라면 ‘한국에 사업장이 없다’거나 ‘자체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의 규제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규제를 따르는 국내 업체들과의 역차별 논란도 일 수밖에 없다.
이런 분석대로라면, 정부는 지도데이터 반출을 허용할 게 아니라 구글이 국내법을 따르도록 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이른바 ‘구글세’ 도입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부가 구글의 지도데이터 국외 반출 허용 요청을 들어줄지 결정하기에 앞서 토론회 등을 통해 향후 예상되는 부작용과 대비책 및 부수효과에 대한 의견을 널리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향후 중국의 알리바바 등 다른 나라 사업자들도 구글과 같은 요구를 해올 수 있고, 구글이 지도에 독도와 백두산 등을 어떻게 표기할지 등도 염두에 둬야 한다. 8월25일까지 답을 주면 되는 만큼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정부는 되레 ‘함구령’을 내려 뒷말을 낳고 있다. 지난 22일 국토교통부·외교부·통일부·미래창조과학부·국방부·안전행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가정보원의 과장급 실무자들이 비공개 회의를 열어 구글의 요청 건에 대해 협의했는데, 밖으로 알려진 것은 입막음을 철저히 했다는 것뿐이다. 회의 시작 전은 물론이고 끝낼 때도 ‘외부 발설을 금한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김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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