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고교생들과 1박2일 독서토론회를 했다. 청소년들은 어떤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그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책 읽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현재의 산업과 직업 구조가 새로운 기술들에 의해 지속 변화할 것이라는 최근의 분석과 전망을 소개하면서 학생들에게 진로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진로와 직업을 선택할지 결정한 사람들 손들어 보세요.” 70% 가까운 학생이 “저는 진로를 결정했어요”라고 자신있게 손을 들었다.
놀라웠다. 책읽기와 토론을 좋아하는 학생들이라 해도, 이렇게 많은 학생이 진로를 정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많은 학생이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다는 것이 놀랍고 대견하다”면서도 “그런데 미래에 내가 어떤 직업과 진로를 가질지 너무 일찍 결정하는 것보다 열어두고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미래는 우리가 지금 생각한 대로 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친구는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좋지만, 그런 게 없으면 진로와 직업을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사회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처럼 자신과 사회에 대한 고민과 탐색을 하는 것도 청소년기에 필요한 방황이라고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당혹해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밤중에 지도교사 중 한 분이 찾아왔다.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선생님이 가르친 것과 다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항의를 해 난감했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고등학교에서는 진로 교육을 강화하면서 학생들이 진로를 조기에 선택하도록 해왔는데 “미래를 알 수 없으니 특정한 직업과 진로를 구체적으로 준비할 필요 없다”는 강의를 듣고 혼란에 빠졌다는 말이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너무 눈앞의 목표만을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멀리 보고 준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못한 것을 반성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진로 교육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다. 미래의 모습을 알 수 없는데 구체적인 직업을 꿈꾸게 하고 직무 교육을 한다. 학생들에게 “진로를 결정한 학생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세요. 그렇더라도 미래는 하나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명심하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준비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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