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터넷상담센터입니다. 많은 사람이 통신사를 바꾸면서 지원 혜택을 선호합니다. 저희는 엘지(LG)·에스케이(SK)·케이티(KT) 3사를 통합으로 상담이 가능하고요. 70만원 상당의 (현금 및 사은품)을 드립니다.”
2주 전쯤부터 이런 문자가 하루에 한두 통씩 날아오기 시작했다. 생각 없이 넘겼는데, 어느 날에는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3년 전에 인터넷·티브이(IPTV) 가입을 도와드렸던 센터입니다. 약정이 얼마 남지 않아 연락드렸습니다.”
그제야 알아챘다. 우리 집 인터넷·아이피티브이 약정 기간이 9월이면 끝난다는 사실을. 3년 전에는 엘지유플러스(LGU+) 온라인몰에서 가입했다. 경품으로 준다는 물걸레 청소기가 탐나서다. 약정이 끝나간다니 재약정을 하든 통신사를 바꾸든 해야 했다. 통신 3사(에스케이브로드밴드(SKB)·케이티(KT)·엘지유플러스) 온라인몰을 둘러봤다. 3사 모두 텔레비전·공기청정기 등 가전제품과 백화점 상품권 등을 내걸었다. 어림잡아 30만원 수준은 돼 보였다.
인터넷·IPTV 약정기간 끝나 통신사 변경하면 50만원 가량 혜택 그냥 약정 연장 땐 10만~40만원 신규·약정·재약정 따라 혜택도 달라 A통신사→B통신사→다시 A통신사땐 최대 88만원가량 혜택 방통위 ‘자체 가이드라인’ 법망에 막혀 다시 규제안 행정고시했지만 규제개혁위서 반년 넘게 ‘잠자는 중’
이른바 ‘3사 통합’ 가입센터(판매점)가 제안하는 사은품과 혜택은 더 달콤했다. 서너곳을 알아보니, 통신사를 바꾸면 50만원 남짓을 준다고 했다. 더 파격적인 제안도 있다. 일단 엘지유플러스에서 에스케이브로드밴드로 갈아탄다. 6개월 치 이용료(25만원)와 설치비 8만원은 가입센터에서 내준다. 상담원은 “‘대납’은 불법이기 때문에 고객님 계좌로 ‘선납부’ 해드린다”고 했다. 33만원을 현금으로 준다는 것이다. 6개월 뒤엔 다시 엘지유플러스로 돌아오는 조건이다. 그땐 신규가입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시 현금 55만원을 지급하고, 쓰던 셋톱박스도 새것으로 갈아준단다. 이렇게 해서 총 88만원의 혜택을 준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죠?”
상담원의 대답은 이랬다. “지난해 에스케이에서 엘지나 케이티로 이동한 고객이 많아서, 에스케이에서 고객 유치를 좀 도와달라고 해서 한시적인 혜택을 드리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말로만 설명해 드리는 게 아니라요. 고객님께서 진행하신다고 말씀만 하시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이 명시된 약정보증서를 드릴 거에요. 분실하지 않도록 메일로 넣어드립니다.”
“그냥 재약정을 하면 무슨 혜택이 있죠?”
“상품권 10만원 지급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019-114)에 전화를 걸었다. ‘재약정’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해지할 것이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하니, 해지 방어부서로 연결됐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약정 기간이 2020년까지로 아직 한참 남아 있다고 했다. 중간에 ‘기가 인터넷’으로 교체했는데, 그때 약정 기간이 연장됐다고 했다.
“만약 지금 약정이 끝나 재약정하면 어떤 혜택이 있죠?”
“상품권 40만원을 드립니다.” 갑자기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는 약정 연장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는데요?”
“약정기간 중간에 연장하는 것과 재약정하는 것은 혜택이 다르고요. 그때 인터넷요금을 할인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신규가입이나 재약정 혜택은 때에 따라 다릅니다. 하루 만에 있다가 사라지고 없다가 생기죠.” 똑같은 인터넷을 쓰지만 신규 가입이냐, 약정 연장이냐, 재약정이냐에 따라 각각 혜택이 다르고, 그 선택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 또 다르다는 것이다.
3년 약정으로 인터넷·아이피티브이를 쓰면 통상 월 4만~4만5천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3년 치를 합하면 150만원 남짓이다. 만약 통신사를 바꿔 50만원을 현금을 받는다면, 3년 치 요금의 30~35%를 미리 받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해 ‘해지 방어부서’의 꼬임에 넘어가 통신사를 바꾸지 않고 그냥 재약정을 하면 바로 ‘호갱’(호구 고객)이 된다.
이동통신 시장은 2014년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시행되면서 공시지원금과 이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선택약정)이 정착돼 이른바 ‘불법 보조금’이 상당부분 줄어든 상태다. 인터넷·아이피티브이 시장은 다르다. 일단 통신 3사뿐만 아니라 케이블티브이라는 또 다른 경쟁자가 존재한다. 인터넷·아이피티브이·이동통신 결합이 대세가 되면서 통신사들은 케이블티브이 가입자를 빼 오고 있고, 아직도 빼 올 고객이 많이 남아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가운데 아이피티브이 가입자는 1422만여명으로 케이블티브이 가입자 1409만여명을 처음으로 앞지른 데 이어 갈수록 격차를 벌리고 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지난달 말 ‘일몰’돼 통신사의 케이블티브이 인수합병 등이 진행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이에 케이블티브이방송협회는 지난 2일 성명을 내어 “과다 경품 지급의 폐해가 유료방송 시장까지 교란하는 등 위험수위가 도를 넘었다”며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이용후생과 경품을 맞바꾸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시장 상황을 심각히 인식해 조속한 법 제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도 “요금으로 경쟁하는 것이 낫지 사은품으로 경쟁하는 것은 전체적인 후생 차원에서 좋지 않다”고 말했다.
과다한 경품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22만원(3가지 결합 땐 25만원)을 초과하는 경품을 제공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위반한 통신사에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엘지유플러스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고,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가이드라인을 초과하는 경품을 제공했다고 해서 ‘공정한 경쟁 또는 다른 이용자의 이익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부당한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며 엘지유플러스의 손을 들어줬다. 가이드라인이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된 것이다.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의 ‘경제적 이익 등 제공의 부당한 이용자 차별행위에 관한 세부기준’ 고시를 마련해 지난해 12월 행정 예고했다. 내용을 보면, 인터넷은 15만원, 티브이는 4만원, 인터넷전화는 2만원, 사물인터넷은 3만원을 경품 제공 기준으로 삼고, ‘부당한 차별’ 판단 기준은 기준금액 초과뿐만 아니라 이용자·결합서비스 구성별·가입창구별·지역별 차별 여부와 정도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고시는 현재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에 반년 넘게 묶여있는 상황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법원이 과징금 부과를 위한 법적 기준이 없다고 해 패소한 만큼, 고시를 통해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한 것”이라며 “중요 규제로 분류돼 심사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지만 잘 처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엘지유플러스를 제외한 다른 통신사들은 고시 제정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