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클라우드 자회사인 네이버 비지니스 플랫폼의 박원기 대표가 지난 18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데이터센터 ‘각’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공공·금융 클라우드 시장에서 글로벌 사업자들에 맞서 데이터 주권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대한민국의 데이터 주권을 지키겠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디지털경제 시대의 기간산업이다. 글로벌 사업자들만의 각축장이 되도록 놔둘 수 없다.”
“클라우드 시장을 지키는 게 우리의 소명이다.”….
네이버의 클라우드 자회사인 ‘네이버 비즈니즈 플랫폼(NBP)’ 경영진이 지난 18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며 쏟아낸 말들이다. 네이버는 2017년 3월 한성숙 대표 취임 이후 ‘기술기업’ 변신을 선언했고, 그해 4월 엔비피를 통해 클라우드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인공지능(AI)·빅데이터·번역·자율주행차 관련 기술을 직접 개발하거나 전문업체 인수 등으로 확보해 클라우드 서비스의 경쟁력을 키워왔다.
클라우드란 연산장치, 저장장치, 소프트웨어, 콘텐츠와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기술 등을 따로 구매하거나 설치할 필요 없이 전기나 수도처럼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 기간산업으로 꼽힌다. 모든 연산과 데이터 저장 및 관리가 서버에서 이뤄져, 이용자는 화면과 키보드, 음성인식 등 입출력장치와 약간의 메모리만 갖추면 된다. 초고속 인터넷과 5세대(5G) 이동통신 등 유·무선 인터넷 품질이 좋아지면서 가능해졌으며, 빠른 속도로 대중화하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박원기 엔비피 대표는 “늦게 출발했지만 기술 경쟁력과 상품 라인업에서는 글로벌 사업자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고객들과 365일 24시간 소통할 수 있는 토종 사업자라는 점을 앞세워 민감 정보를 다루는 공공·금융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이 아마존웹서비스(AWS)·마이크로소프트(MS)·알리바바·아이비엠(IBM)·구글 같은 글로벌 사업자들만의 각축장이 되지 않도록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이날 등장한 내용들은 거창했고 때론 ‘비장’하기까지 했다. “기업들은 물론 금융회사와 정부·공공기관들까지 전산시스템을 민간(공용)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는데, 클라우드는 디지털경제 시대의 기간산업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기간산업 관련 조사에서 클라우드는 전기, 항공·철도, 통신, 에너지에 이어 다섯 번째로 꼽혔다. 국방과 스마트시티보다도 앞섰다. 클라우드 시장을 지금대로 두면, 글로벌 사업자들에게 종속돼 국가 안보와 데이터 주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전례가 있다. 1990년대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까지 ‘국가 정보화’를 외쳤다. “산업화에선 뒤졌지만 정보화에선 앞서가자”는 구호가 넘쳐나고, 청와대가 각 부처와 정부·공공기관의 정보화 추진 실적을 챙기기까지 했다. 각 부처를 포함한 정부기관들 모두 일단 업무 전산화를 추진해 직원들이 개인용컴퓨터(PC) 앞에 앉아 일을 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게 시급했다.
국가 정보화, 그중에서도 청와대, 국가정보원을 비롯해 국방, 행정, 의료 등 국가 안보상 중요하거나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기관들의 정보화는 보안 측면에서 가능하면 상업용 소프트웨어를 배제한 상태로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오픈소스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필요한 소프트웨어들을 직접 개발하도록 권고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정보화 추진 실적에 쫓긴 나머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개인용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와 업무용 소프트웨어 ‘오피스’ 같은 상업용 소프트웨어 제품에 의존했다. 개인용 컴퓨터를 설치한 뒤 프로그램을 까는 것으로 쉽게 실적을 채울 수 있었다.
이 일은 재벌 계열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이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재벌 오너 자녀들이 큰 혜택을 보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 등이 계열 시스템통합업체에 ‘시드머니’(상속을 통한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종잣돈)를 묻어 수조원대로 불린 게 대표적이다. 수익률이 1000%를 넘기도 했다. 오너 자녀들의 종잣돈을 키우려니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가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모습. 네이버는 경기도 용인에 이보다 6배 큰 제2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덕분에 우리나라는 구호대로 정보화에서 앞설 수 있었고 ‘정보통신 강국’을 자처하기도 했다. 반면 부작용도 컸다.
우선 국가 정보화가 마이크로소프트 등 특정 다국적 기업의 정보기술(IT)에 종속된 상태로 추진되면서 여러 후유증을 낳았다. 이른바 ‘컴퓨터 2000년 문제’(Y2K 문제, 밀레니엄 버그라고도 불림) 당시에는 미국 컴퓨터 업체들의 ‘수요 창출’ 전략에 따라 국내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업무용 프로그램 가운데 연도 난의 ‘00’이 2000년을 뜻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는 지적에도, 상당수 기관이 컴퓨터·소프트웨어 공급자의 권고에 따라 새것으로 교체하느라 막대한 예산을 낭비했다.
주객이 전도되는 경험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와 오피스를 놓고 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공급자고 우리나라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 등은 소비자다. 소비자 목소리가 커야 하지만 실제로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끌려다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새 윈도 제품에 대한 마케팅 차원에서 기존 윈도에 대한 보안지원 중단 계획을 내놓고, 우리나라 국가사이버안전센터장 등이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찾아가 “보안지원 중단 일정을 늦춰줄 수 없겠냐”고 읍소하는 상황이 반복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후발 사업자를 따돌리기 위해 세계 표준(시장 표준)에 맞지 않는 방식을 권해, 우리나라 국가 정보화의 효율성을 떨어트리고 이용자들의 불편을 초래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업·금융회사·정부기관 등이 인터넷 누리집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브엑스(X)’를 채택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엔비피의 이날 기자간담회 내용은 과거의 이런 경험을 곱씹게 한다. 당시는 정보화 초기 단계인 ‘전산화’였던 데 비해 지금은 정보화의 고도화 단계인 ‘클라우드 전환’이란 것만 다를 뿐 나머지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가 클라우드 활용을 혁신성장 전략으로 꼽아 “2021년까지 세계 10대 클라우드 강국에 들자”는 구호와 함께 공공·금융 쪽 규제 풀기에 앞장서고, 재벌 계열 시스템통합회사들이 글로벌 사업자들을 줄줄이 끌고 들어오는 게 딱 그 당시 모습이다.
대형 시스템통합업체들이 글로벌 사업자를 앞세워 ‘면피’와 쉬운 마케팅을 꾀하는 것도 그 때와 판박이다. 박원기 대표는 “지난해 아마존웹서비스가 중단돼, 이 서비스를 이용하던 게임서비스와 온라인쇼핑몰 등이 한동안 영업을 못 하는 피해를 봤다. 이런 경우 시스템통합업체들은 고객사에 ‘그나마 아마존 것을 썼으니 피해가 그 정도에서 멈췄지, 다른 곳이었으면 더 컸을 수도 있다’고 한다고 한다. 토종 업체들이 기술 경쟁력에서 글로벌 사업자들에게 결코 뒤지 않는데도 시장에서 밀리는 이유다”고 말했다. 토종 클라우드 업체들은 “대형 시스템통합업체들이 클라우드를 기간산업으로 보지 않고 글로벌 사업자들의 현지 대리점 수준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한다. 적어도 국내 기업이나 공공·금융 쪽에는 토종 사업자 것을 권해, 토종 클라우드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동시에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기회가 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업체 임원은 “한글과컴퓨터가 업무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대적해 국내 시장을 지켜내고, 네이버가 검색·포털 시장에서 구글과 당당히 경쟁하는 상황이 클라우드 시장에서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재벌 계열 시스템통합업체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공용(퍼블릭)과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섞는 ‘하이브리드’와 여러 업체 것을 묶는 ‘멀티 클라우드’ 전략을 택하고 있다. 옛날처럼 특정 글로벌 사업자에게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말했다. ‘멀티 클라우드 전략에서 왜 토종은 빠졌느냐?’는 질문에는 “글로벌 사업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드러내놓고 권하지 못할 뿐 고객이 토종을 원하면 맞춰준다”고 밝혔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