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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기업들이 수신자요금부담 새 전국대표번호 ‘14xxxx’ 이용을 꺼리는 이유

등록 2019-05-06 13:41수정 2019-05-06 21:35

Weconomy |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6자리라서 ‘15xx’ 등보다 기억하기 쉽고
‘상담 통화료 고객에 전가’ 문제도 해결
통신비 부담 커져 최고경영자 ‘결단’ 필요
“CEO 고객 마인드·도덕성 잣대” 지적도

수신자(기업)가 통화료를 부담하는 새 전국대표번호 ‘14xxxx’ 서비스가 도입된 지 2주일이 지났지만, 이를 이용해 고객 상담이나 상품 주문을 받는 기업은 아직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신 업계에 따르면 2곳이 가입 신청을 했으나 아직 대표 번호를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애초 새 전국대표번호 서비스가 만들어질 때는 통신사·유통업체·금융사 등 대형 콜센터를 운영하거나 텔레마케팅을 많이 하는 500여개 기업이 이용할 것으로 기대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업이 상품 주문·상담 통화료 등을 고객한테 떠넘기는 불합리한 상황이 해결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사실 15xx·16xx·18xx 국번의 8자리 번호를 쓰는 기존 전국대표번호 서비스를 이용하던 기업들은 새 전국대표번호 서비스로 갈아탈 이유가 없다. 새 전국대표번호로 바꾸는 순간, 이미 알려놓은 기존 전국대표번호를 포기해야 하고, 그동안 고객한테 떠넘겨오던 엄청난 규모의 통화료도 떠안아야 한다. 이동통신 가입자가 상품 주문을 하거나 유지보수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전국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통화한 시간만도 연간 50억분에 달하고, 이를 요금으로 환산하면 54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유선전화 가입자가 이용한 것까지 포함하면, 새 전국대표번호 전환에 따른 기업의 통화료 부담은 더 늘어난다.

상품 주문을 받거나 유지보수를 하면서 발생하는 통화료는 기업이 부담하는 게 옳다는 기업 또는 최고경영자(CEO)의 ‘깨달음’이나 ‘결단’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에 새 전국대표번호 도입 여부로, 해당 기업이 고객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와 더불어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자의 도덕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기존 전국대표번호를 고집하는 기업의 고객 서비스 마인드와 최고경영자의 도덕성은 ‘빵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동안 기업이 기존 전국대표번호를 쓰며 상품 주문과 서비스 상담 때 발생하는 통화료까지 고객에게 떠넘기는 행태를 두고 논란이 있어 왔다. 정부가 새 전국대표번호를 도입한 것도, 김경진 의원이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소비자가 유지보수 등 해당 기업 서비스를 받기 위해 1588 등 전국대표번호로 전화를 거는 데, 통화료를 고객(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 게 계기가 됐다.

수신자 요금부담 전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080으로 시작되는 12자리 번호의 ‘080 전화’가 원조이다. 이 전화 역시 통화료를 수신자가 전액 부담하게 한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새 지능형 전화 상품’으로 전국대표번호 서비스를 출시한 이후 080 전화를 쓰는 기업이 빠르게 줄어, 지금은 홈쇼핑 업체 등 극히 일부만이 유지하고 있다. 전국대표번호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16xx·18xx 등으로 국번이 확대되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서 전국대표번호는 080 전화에 견줘 전화번호가 3자리나 적고, 통화료를 고객에게 떠넘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용 절감을 강조하는 처지에서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또한 통신사 쪽에서 보면, 전국대표번호 가입자와 통화료 부담 주체가 달라 가입자 유치 마케팅이 쉽고, 통화료를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국대표번호 영업을 담담했던 한 통신사 관계자는 “기업에 전국대표번호로 바꾸면 전화번호 자리가 적어 고객들이 기업하기 쉽고, 통화료를 고객이 부담하기 때문에 통신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하면 대부분 넘어온다”고 말했다. 전국대표번호 서비스 초기에는 통화료가 3분 한 통화당 150원으로 책정됐다가 지금은 50원까지 내렸으나 여전히 비싸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견줘 새 전국대표번호는 6자리 번호를 사용한다. 기존 전국대표번호보다 고객들이 외우기는 더 쉽다. 대신 고객에게 떠넘기던 상품 주문·상담 및 유지보수 통화료를 떠안아야 한다. 통신사 쪽은 서비스 가입자와 통화료 부담 주체가 다시 일치돼 부담스럽다. 그동안 기업이 부담해야 할 통화료를 고객들에게 떠넘겨왔다는 점을 지적해야 하니 영업이 쉽지 않고, 고객(기업)의 눈치를 봐야 해 통화료를 높게 책정하기도 쉽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이 새 전국대표번호 이용이 저조한, 아니 전무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업과 최고경영자들이 ‘고객’을 ‘호갱’(호구 고객)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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