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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배민-DH 기업결합, 공정위 결정이 ‘색다른’ 세 가지 이유

등록 2020-12-28 17:29수정 2020-12-28 17:55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2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배달의 민족-요기요 배달앱 사용자 간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2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배달의 민족-요기요 배달앱 사용자 간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

공정거래위원회가 28일 내놓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와 국내 1위 배달앱(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결합 관련 결정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방법론과 접근법을 토대로 한다. 앞으로 수없이 등장할 데이터와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을 둔 온라인 플랫폼의 독과점 가능성을 판단할 때 필요한 핵심 준거점을 공정위가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① 다면 분석

경쟁 제한성을 따져보는 기업결합 심사의 첫 관문은 ‘시장 획정’이다. 심사관과 피심사인이 가장 신경전을 벌이는 부분이다. 시장 획정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경쟁 제한성은 존재할 수도,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심사인이 통상 넓은 시장 획정을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아한형제들도 전화 주문 시장까지 포함해 경쟁 제한성을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심사의 특징은 공정위가 하나가 아닌 복수의 시장 획정을 한 것이다. △배달앱 시장 △음식배달 시장 △공유주방 시장이 그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시장을 구분한 뒤, 모두 경쟁 제한성을 따졌다는 뜻이다. 과거 공정위는 하나 또는 둘 정도의 시장만 획정해 경쟁 제한성을 살폈다.

이는 ‘온라인 플랫폼’의 특수성에 공정위가 주목했기 때문이다. ‘플랫폼’인 배달의민족은 주문자-음식점-배달자(라이더) 세 주체를 매개하며 수익을 얻는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 공유주방 시장까지 공정위가 살핀 것은 배달앱 사업자가 ‘음식 제조’ 영역까지 진출할 개연성을 내다봤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연관 사업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자의 확장성(시장 지배력 전이)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미 딜리버리히어로가 국외 시장에선 공유주방 시장에 적극 뛰어든 상태다.

전통 산업에서도 기술 혁신에 따라 ‘이종 산업간 융·복합화’가 일고 있다. 전자회사인 미 애플이 전기차를 매개로 완성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각자 고유 영역에서만 성장해온 전통 기업들은 인공지능(AI)과 고성능 반도체, 빅데이터를 매개로 과거에는 넘보지 않았던 이종 산업 진출을 중장기 사업 검토 대상에 넣어두고 있다. 이번 공정위의 다면 시장 분석과 평가는 향후 등장할 이종 산업간 기업결합 때도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② 데이터 자산에 주목

‘정보자산과 관련된 경쟁 제한성 평가’를 공정위가 진행한 것도 눈에 띈다.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결합으로 각각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가 더해질 때 시장에 미칠 파급을 따져본 것이다. 공정위는 두 회사의 기업결합으로 확보할 정보자산이 ‘압도적’이라는 평가했다. 풍부한 데이터를 활용해 경쟁사를 압도할 마케팅을 하며 독점력을 더 강화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무료 제공 정보의 질을 떨어뜨려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1~2년 새 등장한 스타트업 상당수가 나쁜 수익성에도 수천억~수조원의 가치 평가를 받는 배경엔 확보한(또는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 데이터의 가치가 자리잡고 있다. 과거 ‘기사 포함 렌터카’ 사업을 한 타다를 이끈 이재웅 대표가 타다를 통해 무궁무진한 사업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당면 운송 사업에서 돈을 벌기보다는 운송 사업에서 축적될 정보를 활용해 자율주행 등 다양한 수익 사업으로 진출할 속내를 드러낸 것이었다. ‘데이터가 곧 황금’인 시대임에도 그간 경쟁 당국은 이런 흐름에 걸맞은 분석을 내놓거나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속에 든 황금은 보지 못하고 외피만 보고 기업결합을 승인 혹은 불허해왔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데이터 영역까지 경쟁제한성 판단 준거로 끌어온 것은 데이터가 황금인 4차 혁명시대에선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③ 강화된 경제분석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 직후부터 경쟁 제한성 판단 때 경제분석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시장이 한층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단면적 경제분석에 토대를 둔 경쟁 당국의 결정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봐서였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조 위원장은 시장구조개선정책관실 산하 경제분석과 인력을 확충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인 조성익 박사를 경제분석과장으로 영입했다. 이번 기업결합 심사는 경제분석에 공들여온 조 위원장의 그간 노력이 오롯이 담겨있다.

이번 심사에서 활용된 경제분석은 임계매출감소분석·총전환율분석 등 기존 단면 시장 분석 도구를 변형해 다면적 시장에 적용한 게 특징이다. 두 회사의 기업결합으로 배달앱 시장과 음식 배달시장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수수료 인상 등 독과점적 현상이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어느 강도로 나타날지를 따졌다.

단면 시장 분석 도구를 개량해 다면 시장 분석에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성익 경제분석과장은 “이번 경제분석 방식을 실무에 적용한 것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찾아보지는 못했다. 피심인들(딜리버리히어로·우아한형제들 등)이 확보한 데이터가 풍부했고 적극적으로 당국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번 분석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과거 공정위는 ‘다면 시장 파급 효과’는 주로 이해관계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크게 의존해 왔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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