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이용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제3의 사업자에게 최소 330만명의 개인정보를 제공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안과 관련한 집단분쟁조정 절차가 두 달 가까이 제자리걸음 중이다. 페이스북이 침해 사실을 부인한다는 이유로 개보위가 조정 절차를 시작도 않은 채로 각하한다면, 권리구제 기관으로서 역할에 소홀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개보위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4월 16일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법무법인 지향이 신청한 페이스북에 대한 집단분쟁조정 절차를 이날까지 시작하지 않았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분쟁조정 신청을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조정안을 작성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조정안이 나와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는데도, 심지어 절차 개시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번 집단분쟁조정은 페이스북이 국내 이용자 1800만명 중 최소 330만명의 개인정보(학력, 경력, 출신지, 결혼·연애여부 등)를 무단으로 제3자에게 제공해 지난해 11월 67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던 일을 계기로 시작됐다.
정부가 집단분쟁조정 절차를 시작하지 않는 이유는 침해 사실을 부인하는 취지의 페이스북 쪽 주장을 고려해서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11월 과징금 결정에 대해서도 불복하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페이스북이 침해 사실도 부인하고 분쟁조정에도 응하지 않고 있으니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고 각하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개보위 쪽의 이런 태도가 권리보호·구제 기관으로서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한다. 상대방이 최종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조정이 결국 깨지더라도, 지금처럼 절차를 시작도 않고 끝내려는 것은 개보위 쪽이 제 역할을 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도 피신청인(페이스북)이 침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을 분쟁조정 거부나 중지사유로 보지 않는다. 이에 법무법인 지향과 진보넷은 지난달 25일 “위원회가 단지 페이스북 쪽에서 개인정보 침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이유만을 들어 절차 개시조차 하지 않고 각하한다는 것은 법에 어긋나고 개인정보주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절차 개시를 촉구하는 추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개보위 관계자는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서 구체적인 설명이 어렵다”며 “6월 안으로 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만 했다.
한편 시민사회는 지난해 11월 과징금 처분 결정문을 바탕으로 페이스북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추가로 위반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파악해 이날 개보위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페이스북을 추가로 신고했다. 글로벌 서비스인 페이스북은 각 국가의 사업을 관할하는 회사가 다르다. 한국 사업은 ‘페이스북 아일랜드’에서 주관하다 2018년 7월 14일 ‘페이스북 잉크(Inc)’로 운영주체가 바뀌었다. 서비스 업체가 바뀌면 개인정보도 제3의 회사로 이동하게 되니 정보의 이전에 대한 이용자 동의 등을 받아야 하는데, 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게 시민사회 쪽 판단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침해와 관련한 정부 조사에 비협조적일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가 요청한 개인정보 이용내역 열람청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며 “초국적기업이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활용하고 이용자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는 등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쪽이 감독기구의 역할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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