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열린 에이치엠엠(HMM)의 1만6천TEU급 마지막 컨테이너 선박 ‘한울호’ 명명식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에이치엠엠 제공
국적 원양 해운업체 에이치엠엠(HMM)이 ‘한울호’를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된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일환으로 발주한 대형 컨테이너 선박 20척(2만4천TEU급 12척·1만6천TEU급 8척) 건조가 모두 끝났다. 에이치엠엠은 선복량(해운 공급 능력)이 85만TEU(20피트 컨테이너 하나)로 최근 3년 새 2배로 늘며 세계 8위 해운업체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에이치엠엠은 내년까지 선복량을 100만TEU 이상으로 늘리겠다며 1만3천TEU급 컨테이너 선박 12척 추가 발주 방침을 밝혔다. 일각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종식 뒤 글로벌 물동량이 줄어들 경우 10년 전의 공급과잉·치킨게임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해운업계는 “바로 그 점 때문에 호황일 때 초대형 선박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이치엠엠은 23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1만6천TEU급 컨테이너 선박 ‘한울호’ 명명식을 했다. 이 회사가 발주한 여덟번째 같은 급 컨테이너선이다. 대모(도끼로 밧줄을 끊어 배를 바다로 내보내는 행사자)는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부인 심연옥씨가 맡았다. 한울호는 오는 25일 에이치엠엠에 인도된 후 이 업체가 참여한 해운동맹인 ‘디 얼라이언스’ 소속 회원사들이 운영 중인 유럽노선에 투입될 예정이다.
에이치엠엠은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발주한 대형 컨테이너 선박 20척 가운데 2만4천TEU급 12척은 지난해 4~9월에, 1만6천TEU급은 올 3월부터 건네받기 시작했다. 애초 1만6천TEU급은 4월부터 순차적으로 인도받을 예정이었으나, 글로벌 물동량 증가로 국내 수출 기업들이 물류난을 호소하자 인도 시점을 앞당겼다.
1만6천~2만4천TEU급 20척을 모두 인도받으면서 에이치엠엠의 선복량은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추진 이전 40만TEU에서 85만TEU로 불어났다. 선박 크기도 대형화했다. 에이치엠엠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추진 이전에는 1만TEU 미만급이 주력이었던 데 비해, 지금은 1만6천~2만4천TEU급의 초대형 선박이 주력”이라며 “1만TEU급 이상 최신 대형 선박으로 바꾸는 계획을 지속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말 그대로 죽다가 살아났다. 해운산업은 2016년 8월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까지 올랐던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 돌입 전후로 빠르게 쇠락했다. 한진해운 선박 100여척의 국내외 항만 입항이 불허되면서 물류대란이 발생했고, 글로벌 주요 화주들은 추가 파산을 우려해 한국 해운업체 이용을 기피하면서 국내 업체의 운송량이 급감했다. 결국 그 해를 넘기며 한진해운은 아시아-미주 노선 운영권을 에스엠(SM)상선에 넘긴 뒤 파산했고, 글로벌 해운사와 화주들의 한국 해운업체 기피는 더욱 심해졌다.
반전은 지난 2018년 4월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수립으로 해운업체들이 한국해양진흥공사의 보증을 받아 선박 건조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됐다. 글로벌 해운사와 화주들에 한국 정부가 해운산업을 재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메시지가 됐다. 이를 계기로 에이치엠엠은 세계 3대 해운동맹 가운데 하나인 ‘디 얼라이언스’의 정회원으로 가입(이전에는 2M(머스크·엠에스시)과 전략적 협력관계)했고, 1만6천~2만4천TEU급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 20척(3조1500억원 규모)을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에 발주하는 등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해운산업과 국내 유일 국적 원양 해운업체 에이치엠엠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차원을 넘어 날개를 달아줬다. 온라인 주문을 기반으로 하는 이(e)커머스 시장 급성장으로 글로벌 물동량이 급증했고, 이 때문에 선복량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해운 운임도 빠르게 올랐다. 실제 해운 운임 흐름을 보여주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6월12일 1015.33에서 올 6월11일 3703.93으로 3.5배 가까이 높아졌다. 에이치엠엠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미주와 유럽노선 해운 운임은 더욱 가파르게 올랐다.
이에 힘입어 에이치엠엠의 지난해 매출(6조4133억원)·영업이익(9808억원)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조193억원으로 지난해 1년 치보다도 많다. 2분기부터는 글로벌 해운시장이 성수기다. 물동량이 계속 증가해 운임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2분기와 하반기 실적은 더 좋아질 것으로 점쳐진다.
중장기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코로나19 특수가 줄면 당장 물동량에 변화가 올 수 있다. 김태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은 23일 대한상의에서 한국해운협회와 한국무역협회 공동 주관으로 열린 ‘해운대란 극복과 안정적인 해운시장’ 세미나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들의 가처분 소득이 하락 또는 둔화하는 등의 이유로 컨테이너 선박 수요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물동량이 줄면 자칫 불려놓은 에이치엠엠의 선복량이 부담이 될 여지도 있다. 글로벌 해운업체들이 너도나도 선복량을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물동량이 줄면, 덤핑 수준의 요금경쟁이 벌어졌던 10년 전 같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운업체들은 외려 선박의 대형화가 위기 대응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에이치엠엠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치킨게임이 벌어질 때는 연료·운송 효율이 높은 새 대형 선박을 가진 쪽이 유리하고 살아남는다. 10년 전 국내 해운업체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고 한진해운이 파산하게 된 것도 새 대형 선박 경쟁에서 뒤처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이치엠엠은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초대형 선박 추가 발주를 통해 2022년까지 선복량을 100만TEU 이상으로 늘릴 방침이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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