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재활용품 업체에서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있다. 화성/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선진국 시장에서는 가격이 조금 더 비싸도 ‘플라스틱 프리(free) 제품이 더 잘 팔린다. 그래서인지 바이어들이 ‘당신 회사 제품은 재생 원료를 얼마나 사용했냐’고 묻는다.”
플라스틱 도마·용기·국자 등을 생산해 수출해 1500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주방용품 회사 관계자는 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재생 원료 공급 업체 확보가 어려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2020년 이후 주력 시장인 유럽·호주 등의 대형 바이어가 요구하는 재생 원료 사용량(폴리프로필렌·PP) 기준을 맞추지 못해 영국 경쟁사에 밀린 적도 많다”며 “영국 경쟁사 제품은 리투아니아에서 재생 원료를 조달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인 제품이라고 홍보하는데, 우리 제품은 일반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기 때문”고 말했다.
다른 플라스틱 주방기구 업체 관계자는 “국내 재생 원료 공급처를 알아보면, 가격이 너무 비싸 단가를 맞추기 어렵거나 진짜 재활용해서 생산한 제품인지 확인할 인증 제도 등이 부실해 허탕을 칠 때도 있다”며 “그동안 한국도 일반 플라스틱 원료는 싼값에 잘 생산해왔는데, 재생 플라스틱 공급은 원활하지 않다. 가격이 더 저렴해져야 하고 공급량도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제품을 포함해 마땅한 곳을 계속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주방기구 등 플라스틱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 내다파는 업체들이 재생 원료를 구하지 못해 수출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 재생 원료를 덜 썼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 사례도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 회원국에선 탈플라스틱 정책에 따라 페트병을 만들 때 2025년부터는 25% 이상, 2030년부터는 30% 이상을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를 써야 한다. 벨기에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2025년부터는 비닐봉지에 대해 100% 재생 원료로 만들도록 했다. 대한무역투자공사가 작성한 ‘유럽 주요국의 탈플라스틱 정책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 원료에 대해서는 따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영국은 수입 제품을 포함해 재생 플라스틱 사용 비중이 30%를 밑도는 포장에 대해 t당 200파운드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지난 1월 재생 원료 의무 사용 비율을 최소 15%로 정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한 자원 회수·선별 업체에 설치된 `폐플라스틱 열분해 유화장치'에서 생산된 열분해 재생 연료유. 안성/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석유화학 기업들은 이런 흐름에 따라 재생 플라스틱 원료 확보를 위해 공장을 신설하거나 개조하는 등 관련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제조업체 등에 재생 원료를 공급하는 에스케이(SK)지오센트릭과 롯데케미칼은 각각 울산광역시에 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해 2024년부터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2020년 환경전문 기업 ‘환경시설관리’를 인수한 에스케이에코플랜트는 에스케이인천석유화학과 손잡고 폐플라스틱을 열분해 재활용하는 기술 확보에 나서기로 했다. 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 실증 단계를 밟고 있는 지에스(GS)칼텍스는 생산설비 구축 투자를 고려 중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말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기술에 대한 국제인증을 받은데 이어 사업 확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202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폐플라스틱을 포함한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화 규제가 확산되는 흐름에 따라 기업들이 재생 원료 확보에 앞다퉈 나서면서 재생 원료가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재생 플라스틱 원료 단가가 일반 플라스틱에 견줘 1.8~2배 가량 비싸다”며 “그런데도 재생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은 올해 451억달러(54조원)에서 2026년 650억달러(78조원)로 연평균 7.5% 성장할 전망이다.
■ ‘귀하신 몸’ 재생 플라스틱…대기업들도 앞다퉈 가세
롯데케미칼이 최근 공개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데이터를 보면, 재생 원·재료 사용 제품 수는 2020년 5만4천여개에서 지난해 6만1400여개로 늘었다. 하지만 ‘총 원재료 대비 재생원재료 사용 비율’은 1%에 불과하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까다로운 해외 기준을 맞추려는 흐름이 있어서, 재생 원료 샘플을 요청하거나 적용하려는 회사가 늘고 있다”며 “재생 원료 생산 시설 가동을 서두르고 있다”고 고 말했다.
에스케이(SK)지오센트릭도 같은 처지다. 이 업체 관계자는 “굳이 수치화한다면, 우리도 재생 원료 사용 비중이 1% 미만”이라며 “(재생 원료는)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서는 시장이다. 재활용 원료 사용 제품의 안정성과 환경성에 맞는 품질을 만들려면 원료 수준도 높아져야 하는데, 국내 분리 수거 및 선별 등 재활용 시장 자체가 영세한 것도 업계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에 중소업체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물리적·기계적 방식의 재활용 시장에 대기업이 참여하기도 한다. 지에스칼텍스는 네슬레코리아의 커피머신 네스카페 돌체구스토를 통해 판매 중인 플라스틱 커피 캡슐을 수거해 잘게 부순 뒤 자동차 내외장재와 부품 등의 원료로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리적·기계적 방식의 재활용이란 폐플라스틱에 용제나 열·압력 등을 가해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는 방식이 아닌, 플레이크나 팰릿 같은 알갱이 형태로 쪼갠 뒤 플라스틱 원료로 재활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주로 첨단 기술력이 요구되는 화학적 재활용 사업을 벌여왔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폴리프로필렌(PP)은 과거 산업용품·건설용 제품으로 주로 재활용되었지만, 국내외에서 재생 플라스틱 의무 사용 규제가 강화되면서 최근에는 식품용기·자동차·전자제품 등에도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현재 국내 재활용 분리수거, 선별, 수집 체계로 조달되는 재생 플라스틱 공급만으로는 당분간 산업계의 재생 플라스틱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