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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100원→600원 배당 올려라”…동학개미의 ‘반란’이 시작됐다

등록 2023-03-01 07:00수정 2023-03-01 09:29

급부상한 주주행동주의
올 주주제안 대상 2배 이상 늘 듯
양극화 속 주식에 희망 건 개미들
총수 고액연봉 등 비판일까 촉각
“장기투자 어려워져” 부작용 우려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로비. 한국거래소 제공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로비. 한국거래소 제공

술 원료인 주정을 공급하는 한국알콜은 최근 배당금을 기존 100원에서 600원으로 올려달라는 소액주주들의 제안을 받았다. 이번 주주제안은 대학생 2명이 주도했다. 올 들어 얼라인파트너스, 안다자산운용 등 이른바 ‘행동주의펀드’ 뿐만 아니라 개인투자자들도 연대해 주주제안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기업들도 배당금 확대 등 주주제안에 차츰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활발해진 주주행동주의

2000년대 소액주주 운동을 펼친 ‘장하성 펀드’가 주주행동주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태광 등을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 목소리를 냈고, 이후 대상 기업을 확대했다. 28일 기업지배구조연구원에 따르면, 주주제안을 받은 기업은 2015년 36개였는데 2020년 31개, 2021년 30개로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41개로 늘었고, 올해는 100개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증권가에서 나온다.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주주 행동주의 부상과 한국 자본주의 도전’이라는 보고서를 내어 양극화 확대, 개인투자자 증가, 투자위주 성장 모델의 한계 등을 주주행동주의가 왕성해진 이유로 꼽았다. 1999년 대비 2021년 가계 가처분 소득은 3배 증가한 반면 기업은 9배 증가하는 등 가계와 기업간 소득 격차가 심화하고,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가 더 벌어졌다. 총수 일가를 비롯한 임원 급여는 큰 폭으로 는 데 비해 직원 소득 증가 폭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에 개인들은 부를 늘리기 위해 주식 시장으로 뛰어들어 ‘동학 개미’로 변신했다. 지난해 개인 투자자가 1천만명을 넘었고, 삼성전자 소액주주만도 592만명(지난해 6월말 기준)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63만명보다 크게 늘었다. 또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로 예상되는 등 과거처럼 배당금 대신 투자를 늘려 기업가치를 키울 수 있는 가능성도 희미해졌다. 이에 따라 자신의 부를 늘리는 방식으로 당장의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더 중요해졌고,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로 대표되는 기관투자자들의 책임 투자 강화도 한몫했다.

최근 디비(DB)하이텍의 주주제안을 한 소액주주대표 이상목씨는 “부동산 가격은 뛰고 물가는 오르면서 자산 증식 수단이 주식밖에 없는 상황인데, 주식시장마저 나빠진 것도 (주주제안이 늘어난) 한 원인”이라며 “아울러 지난해 물적분할에 반대했는데 이게 현실화되고, 다른 펀드가 지배구조 투명화를 요구하면 주가가 오른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개인투자자들을 모아 주당 2417원 배당 등의 주주제안을 했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주주제안을 한 얼라인파트너스의 이창환 대표도 “과거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주제안을 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약탈’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공격했지만, 이젠 주식투자자들이 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물산은 최근 주주환원 차원에서 2025년까지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보유한 자사주는 보통주 2471만8099주(13.2%)와 우선주 15만9835주(9.8%)로, 시가로 3조원 규모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크게 느는 상황에서 주주환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도 2018년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하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반대하면서 불발된 이후 배당금을 확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긴 안목으로 끈기있게 투자를 이어가려면 총수의 역할이 중요한데, 당장 주가를 띄우라는 목소리가 커지면 장기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우열 신한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경영권 분쟁을 통해 단기 차익을 노리는 벌처 펀드와 장기적인 안목의 주주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총수 일가의 연봉도 고민거리다. 여러 계열사에서 한해 수십억원을 받는 총수 일가도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3월에 공개될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총수 연봉이 공개되는데, 직원과 격차가 크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향후 이를 개선하라는 요구가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권고적 주주제안 등 제도 개선도

에스엠매니지먼트는 지난해 3월 정기주총에서 얼라인파트너스가 제안한 감사 선임 안건을 받아들였다. 지배주주보다 적은 지분으로도 얼라인파트너스 제안이 유효했던 것은 감사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 제한(3%) 규정 때문이다. 그동안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이나 공정거래법 등을 고쳐 전자투표제 도입, 내부거래 감시 강화, 대표소송 도입 등의 제도 변화가 있었다.

그럼에도 총수 일가 등의 보수 투명화와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과거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되면서 주민들을 더욱 신경 쓴 것처럼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목소리를 기울여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경영진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아서 미국의 ‘세이온페이(Say On Pay·경영진 보수에 대한 주주투표권)’ 제도나 이사회에 보수위원회 설립을 의무화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이온페이는 기업이 임원보수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보수 규모에 대해 표결로 찬반을 묻는 제도다. 가결 또는 부결되더라도 권고적 효력만 있을 뿐 따를 의무는 없다.

보수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제안 범위를 넓히기 위해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 주장도 있다. 경제개혁연대 노종화 연구위원은 “세이온페이처럼 가결 또는 부결되더라도 권고적 효력만을 갖는 ‘권고적 주주제안’을 도입해 주주들의 목소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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