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 전경. 연합뉴스
전 세계적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요 증가로 국내 조선 3사가 유리한 조건에 엘엔지 운반선을 잇따라 수주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되레 중국 조선사에 엘엔지 운반선 기술을 축적할 기회를 주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국내 한 대형 조선사 임원은 <한겨레>에 “엘엔지 운반선 발주가 크게 늘면서 2027∼2028년까지 국내 도크(선박 건조 공간)가 다 차버렸다. 웃돈을 얹어줄 수 없는 선주들이
중국 조선사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엘엔지 운반선 화물창 기술 개발을 맡고 있는 이 임원은 “중국은 그동안 내항선을 통해 꾸준히 엘엔지 운반선 기술을 검증해왔다”며 “지금 중국 조선소가 건조 중인 대형 엘엔지 운반선이 2∼3년 뒤 선주에게 인도된 후 문제없이 운항하면, 중국 조선소들과 가격 경쟁을 해야 한다. 인건비 등 모든 면에서 가격 경쟁으로 가면 불리하다”고 말했다.
엘엔지 운반선 시장은 그동안 국내 조선사들의 독무대였다.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해 액체상태로 만들어낸 엘엔지를 싣는 화물창은 극저온 상태를 견뎌야 해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중국도 시장 진입을 노렸지만 인도된 선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선주들의 발길이 끊겼다. 2016년 중국 국영 조선소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글래드스톤호가 건조 2년만에 해상에서 고장 나 멈추며, 당시 중국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엘엔지 운반선. 삼성중공업 제공
그런데 지난해부터 엘엔지 운반선 발주가 급증하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대규모 천연가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카타르가 엘엔지 운반선을 대거 발주한 데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에서 천연가스 공급 대란이 일어나며 엘엔지 운반선 수요가 급증했다. 국내 조선 3사의 건조 일정이 꽉 차버린 탓에 한시가 급한 선주들이 중국 조선사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2021년 중국 조선사들의 대형 엘엔지 운반선 수주량은 6척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55척을 수주했다.
엘엔지 운반선 화물창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기업 지티티(GTT)가 중국 조선사들을 밀어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내 조선 3사 모두 엘엔지 운반선 1척을 건조할 때마다 이 업체에 100억원가량의 기술 사용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조선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자체
화물창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 지티티가 중국 조선사들의 건조 능력을 끌어올려 국내 조선사의 움직임에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국내 대형 조선사의 기획담당 임원은 “설계 기술만 가진 지티티는 화물창 건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국내 조선소에 파견된 지티티 직원들이 직접 본 제작 과정만 간략하게 전해줘도 중국 조선사 쪽에선 큰 도움이 된다”며 “지티티를 통해 국내 기술이 중국으로 일부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이 건조 중인 엘엔지운반선 화물창 내부 모습. 안태호 기자
조선사 직원들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와 중국간 기술 기술격차가 사라지는 시점은 짧게는 2025년에서 길게는 2029년으로 예측해왔다. 국내 조선업계 전문가 ㄱ씨는 “(격차가 사라지는)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긴 어렵다”며 “한국 조선사들의 건조 능력을 넘어서는 물량이 나오면서 격차가 좁혀지는 시기가 상당히 빨라진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조선산업은 한 때 국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달했지만, 장기간의 불황을 거치며 지난해에는 2.7%까지 줄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시작된 호황기를 맞아 수주한 선박이 올해부터 인도되기 시작하면 국내
수출 감소를 방어할 업종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조선업 수출액은 선박 건조를 완료한 뒤 선주에게 인도될 때 집계된다. 다만, 경기둔화와 고금리 영향 등으로 선주들의 관망세가 확산되면서 올해 조선 시황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1∼2월 세계 선박 발주량은 424만CGT로, 지난해 같은 기간(814만CGT)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개발을 통해 엘엔지 운반선의 경쟁력을 고도화해 중국의 추격에 대비하고, 동시에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연료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기술력을 확보하는 등 엘엔지 운반선 외 시장에서 기술 격차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짚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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