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설계자산(IP) 파트너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최첨단 설계자산 확대에 나선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 누리집 갈무리
삼성전자가 전세계 최상위 반도체 설계자산(IP·아이피)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고객을 영입하는데 필요한 아이피를 다양하게 확보해 파운드리 업계 선두인 대만 티에스엠시(TSMC)를 추격하겠다는 포석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반도체 아이피 기업인 시놉시스와 케이던스, 알파웨이브 세미 등과 협업을 강화해 인공지능(AI)과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율주행, 모바일 등의 아이피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반도체 아이피는 일종의 반도체 설계도로 칩의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짜여진 기능 도면이다. 반도체 제품 설계에 필요한 아이피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가 모두 개발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피 기업들의 개발 능력이 꼭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협력을 강화하는 기업들이 반도체 인터페이스 아이피 시장에서 합산 8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공정설계키트(PDK) 및 설계 방법론(DM) 등의 위탁생산 공정 정보를 아이피 협력 기업들에게 공유하고, 이들은 삼성전자에 위탁생산을 맡길 팹리스 고객에게 생산 공정에 최적화한 아이피를 제공하는 식으로 협력을 강화한다.
삼성전자는 이번 협력을 통해 3나노부터 8나노 공정까지 활용할 수 있는 수십여종의 아이피를 확보할 전망이다. 고속 데이터 입출력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페이스 아이피·칩렛(여러 반도체를 하나의 패키지에 넣는 기술)과 최고 수준의 차량용 반도체 품질을 보장하는 오토모티브 아이피 등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경쟁사인 티에스엠시와 비교해 아이피 개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티에스엠시가 약 5만여개 아이피를 확보한 반면 삼성전자가 가진 아이피는 5천여개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애플이나 퀄컴 등 대형 벤더사 위주로 위탁생산을 할 때 티에스엠시는 중소형 벤더들의 수주를 받으며 아이피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 파운드리의 핵심인만큼 고객들이 더 다양한 아이피를 보유한 티에스엠시에 몰리는 구조다. 반도체는 누가 이른 시간에 칩을 개발해 적시에 시장에 출시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돼 설계와 생산에 드는 소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와 티에스엠시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티에스엠시 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58.5%에서 올해 1분기 60.1%로 올랐지만,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15.8%에서 올해 1분기 12.4%로 떨어졌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자체 조사 결과, 티에스엠시에 비해 4나노 기술력은 2년, 3나노는 1년 정도 뒤처졌지만,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를 적용하는 2나노에선 두 회사의 기술력이 대등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은 지난 9일 서울 연세대학교 강연에서 파운드리 사업을 호텔에 비유하며 “고객들의 요구에 맞게 좋은 시설을 구비한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고객이 필요한 아이피 확보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아이피 기업과 빅딜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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