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18일 인천국제공항에 계류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3년 가까이 결말을 내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이달 초 내기로 했던 합병 심사 결정을 10월께로 미루는 등 국외 경쟁당국이 합병에 대해 깐깐하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사업인 화물 사업부 매각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것도 현재 방안으론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판단한 ‘경쟁제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2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5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해 ‘경쟁제한이 우려된다’는 간략한 심사보고서를 공개했지만 실제로는 대한항공이 경쟁제한 우려를 없애겠다고 낸 대안들에 대해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생 항공사인 ‘에어프레미아’를 비롯해 국내외 항공사가 유럽-한국 간 여객이나 화물 부문에서 대한항공의 시장점유율을 낮출 만한 유의미한 경쟁자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에어프레미아의 경우 올해 6월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주 4회)을 시작으로 유럽 진출을 본격화하고 여객기 화물칸(벨리 카고)을 이용한 화물시장 진입 의사까지 밝혔지만, 유럽연합 경쟁당국은 운항횟수 자체가 적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또 화물기 없이 보잉787-9 여객기 화물칸을 이용해 제한된 화물 운송량(16~20톤)을 제공하는 것도 부정적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화물 분야의 경우 대한항공은 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 항공사 등 외항사 운항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 항공사는 당분간 유럽-한국 노선 운항 계획이 없다고 유럽연합에 답변했다. 티웨이항공도 화물 시장에 진입할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은 유럽연합 경쟁당국을 설득할 시정 조처 방안으로 ‘티웨이항공에 화물기를 대여해준다’거나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부를 따로 떼서 매각하겠다’는 다소 극단적인 대안까지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항공운수 사업의 두 축인 여객과 화물 가운데 화물을 포기하는 건 합병의 실익을 해치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이미 3년 동안 1000억원 가까운 비용을 아시아나항공과 기업결합을 추진하는 데 쓴 상황이다.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제한하기 위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대한항공 발등에는 불이 떨어진 상태다. 국외 경쟁당국 심사가 장기화되면서 시장에선 ‘아시아나항공 제3자 매각설’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반응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모든 경쟁당국과의 협의 내용은 비공개가 원칙”이라며 “대한항공은 시정조치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경쟁당국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화물 관련 시정조치 내용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답했다.
지난 5월 유럽연합 경쟁당국은 두 회사의 기업결합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통해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유럽경제권(EEA)과 한국 간 여객·화물 항공 운송 서비스 시장에서의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는 예비 견해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쪽 최종 결론은 이달 3일 나올 예정이었다가 대한항공 요청으로 두 달 정도 연장됐다. 그전까지 대한항공은 시정 방안을 마련해 유럽연합 경쟁당국을 설득해야 한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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