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관광상품 판매를 금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면세점, 호텔, 여행, 화장품, 항공업을 필두로 국내 기업에 피해가 연쇄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방문객 1724만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807만명(46.8%)이 중국인이었다. 특히 면세점들은 ‘제재’가 전면화하면 연간 수조원의 매출이 날아갈 수 있다. 지난해 12조2757원에 이른 전체 면세점 매출 가운데 7조5천억원가량이 중국인한테서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인 여행객의 40%가량은 단체여행객, 60%가량은 개별 여행객(싼커)으로 추산된다. 단체여행객뿐만 아니라 여행사를 통해 항공·호텔 상품을 이용하던 개별 여행객들의 국내 유입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드 부지 계약 체결 직후 중국 현지와 국내 인터넷면세점 누리집을 해킹당한 롯데는 관광 관련 계열사들이 이미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30% 정도를 차지하는 비즈니스급 호텔인 롯데시티호텔 명동은 불과 이틀 사이에 예약 객실의 30% 가까이가 취소됐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특급호텔은 중국 비중이 작아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지만 비즈니스급은 어느 정도 피해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매출 6조원에서 중국인 비중이 70%를 차지하는 롯데면세점의 타격은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2012년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갈등 때 일본의 관련 업계 피해가 1년 가까이 이어졌다”면서 “중국의 조치가 장기화하면 면세시장은 반토막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인 관광객 증가 등을 기대해 시장에 뛰어든 후발 면세업체들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면세점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며, 이를 발판으로 중국 진출이 활발한 화장품 업계도 타격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현지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에 매장 수백개를 갖고 있어서 만약 불매운동 대상이 되면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직 피해 사례는 접수되지 않았지만 현지법인을 통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매출이 16%를 차지하는 엘지(LG)생활건강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영향으로 3일 화장품 관련 주가는 평균 5.69% 폭락하는 등 사드 후폭풍이 일차적으로 미칠 화장품, 면세점, 카지노 업종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대한항공(-4.77%)과 아시아나항공(-6.41%)도 여객 감소 전망에 급락했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14%(23.90포인트) 떨어진 2078.75에 장을 마치며 지수 2100선을 하루 만에 내줬다.
중국인 발길이 잦은 명동상권 등의 피해도 불가피하다. 2015년 기준 중국인 관광객 1인당 지출액(2391달러=약 277만원)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중국인 입국자를 관광객이라고 단순 가정하면 국내 지출액은 11조원가량 급감하게 된다. 지난해 94억3천만달러에 이른 한국의 여행수지 적자가 갑절 이상 늘어난다는 뜻이다. 한국여행업협회 관계자는 “여행은 심리적 부분이 커서 한국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것만으로도 악영향이 있는데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면 더 영향을 받게 된다. 정부가 조속한 대책을 대놓지 않으면 여행업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서울 시내 호텔 관계자는 “관광산업은 낙수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호텔, 여행사, 관광지 가게와 식당, 노점상까지 타격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번 조처와 직접 관계가 없는 업체들도 긴장을 풀기 어렵다. 중국 <환구시보>는 삼성전자와 현대차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전자업계는 곧 출시 예정인 스마트폰 신제품의 중국 판매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걱정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제품을 출시하려면 전자파 인증 같은 것을 받아야 하는데 사드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했다. 현대·기아차는 반한 감정 확산이 판매량에 영향을 끼칠까 우려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당국의 제재나 불매운동이 벌어진 것은 없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에 충칭에 다섯번째 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다. 기아차도 3개 공장을 가동 중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중국과 50 대 50 지분으로 합작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도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중국시장이 매출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게임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한 대형 게임업체 임원은 “대부분 중국 업체를 통해 서비스해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최근 같은 상황이 한국 게임에 대한 규제를 더 쉽게 하는 측면도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은형 윤영미 김재섭 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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