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5년 실형선고를 받은 ‘삼성 뇌물사건’의 항소심 재판이 12일 시작됐다. 때맞춰 비판적 언론을 겨냥한 국내 최대 광고주 삼성의 광고 집행 중단 조처가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건물.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질문
곽정수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삼성 뇌물사건’의 항소심 재판이 12일 시작됐다. 때맞춰 일부 비판적 언론을 상대로 한 삼성의 광고 중단 조처가 세상에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기자협회보> <미디어오늘> 등은 삼성이 올해 초부터 <한겨레> <제이티비시>(JTBC) 등 일부 언론에 대한 광고 집행을 사실상 중단했다고 잇달아 보도했다. 이들 언론은 박근혜·최순실 등 국정농단 세력과 삼성 간 유착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앞장서 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까닭에 광고 중단에 담긴 의미는 분명해 보인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삼성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면 광고를 주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 언론에 보낸 것”이라며 “삼성이 재판에서 용서를 구하고 쇄신을 다짐하기보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과 흐름을 같이한다”고 분석했다.
자신들에게 비판적 보도를 하는 언론에 대한 삼성의 광고 중단 조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삼성 쪽은 2008년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때도 비판 언론에 대해 광고 집행을 중단했다. 그에 앞서 1999년에도 삼성의 편법·불법 상속 논란을 집중적으로 다룬 언론에 광고가 끊겼다. 국내 최대 광고주인 삼성의 왜곡된 언론관이 20년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돈의 힘으로 언론을 길들이고 여전히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삼성의 ‘언론 길들이기’는 결국 삼성 자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역사의 분명한 교훈이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의 불공정 합병 사건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위해 국정농단 세력에 뇌물을 건넨 혐의와 직결된다. 당시 시장에서는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적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삼성은 이를 무시했다. 대다수 언론도 삼성에 ‘동조’해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자 사설 등을 통해 “당연한 선택”이라며 찬사까지 보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반 뒤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대다수 언론은 국민연금이 불공정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수천억원의 손실을 자초했다며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한 삼성 홍보임원은 “한국에는 진정한 언론이 없다”는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외려 삼성의 자가당착일 뿐이다. 광고 집행을 무기로 언론의 논조를 길들이려 애쓴 주인공은 정작 삼성이기 때문이다. 만약 언론이 광고주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보도했다면, 삼성이 여론을 거스르고 명백히 불공정한 합병을 무리하게 강행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국정농단 세력에 거액의 뇌물을 줘 결국 사법 처리에까지 이르는 불행의 싹이 애초부터 싹트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5년 실형선고(1심)는 삼성의 ‘자승자박’의 결과인 셈인데, 그럼에도 외려 광고 집행 중단으로 대응하는 건 그런 뼈아픈 교훈을 망각한 태도라 할 수 있다.
물론 광고 집행은 기업의 자유다. 또 광고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경영 기반을 만들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분명 크다. 하지만 자본권력의 노골적인 광고 중단 문제는 비판적 논조를 띤 몇몇 언론사의 경영애로 차원을 뛰어넘는다. 공정한 시장질서의 파수꾼 역할을 맡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문제”라고 우려했다. 언론의 역할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국민을 위해 진실 보도를 하는 것이다. 언론이 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만 한다면 설령 기자 월급은 많아질지언정, 민주주의는 말라죽는다. 과거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의혹에 국민이 분노하고 우려를 나타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