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전직 위원장·부위원장이 업무방해 혐의로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다. 그중 일부는 구속됐다. 현직 부위원장도 다음 주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피의자 조사를 받는다. 공정위 설립 이래 최대 위기라는 게 빈말이 아니다.
그동안 공정위는 58세 퇴직예정자들을 일방적으로 내보내 기업에 채용시켰다. 이런 불법 취업자만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수십명에 달한다. ‘고시 출신 2억5천, 비고시 출신 1억5천’ 등의 노골적 요구도 뒤따랐다. 2년간 사무실도 없이 기업의 법인카드만 썼다는 공정위 재취업자의 회사 컴퓨터를 열어 보니, 업무와 관련 없는 10건 남짓한 파일만 있었다고 한다. “기업이 요청해서”라는 공정위 해명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다.
공정위는 독점이나 ‘갑질’ 같은 비경쟁적인 요인들을 막아, 기업들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주는 일을 한다. 그런 공정위가 조사권을 ‘무기’삼아 기업들을 ‘협박’한 것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일이다. ‘갑질’ 막는 국가기관이 ‘갑질’을 한 것이다. 기업의 업무를 방해하고 시장질서도 교란했다. 그 과정에서 선심 쓰듯 기업에 특혜도 베풀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창피한 김상조 현 위원장은 소속 공무원들에게 검찰 수사 관련 함구령을 내렸다. 그런데도 내부 불만은 밖으로 멀쩡하게 새 나온다. 한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인사적체 때문에 한 일이니 그렇게 탐욕스런 범죄는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는 다른 부처와 달리 산하기관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기업에 재취업을 시키게 된 측면이 있다”는 황당한 논리를 내세웠다. 37년간 기업들을 호령하다 보니 그 권력에 취해 공정위가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대목도 있다. 공정위의 ‘갑질’ 채용 계획은 10년 가까이 위원장·부위원장·사무처장에게 보고됐다. 이들에게 보고된 문서에는 “조직의 노쇠화를 막고, 버티면 정년까지 간다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조직을 위해 기업이 손해 봐도 된다는 해괴한 논리이지만, 그동안 장·차관급 공직자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한 셈이다.
현직인 지철호 부위원장이 지난해 중기중앙회 상근감사로 재취업한 일에 대해서도 한 공정위 관계자는 “그 정도면 청렴한 게 아니냐”고 했다. 상근감사는 연봉 1억7천만원에 한 달에 법인카드를 수백만원을 쓰는 자리다. 세금 내는 국민이 들으면 억장이 무너질 소리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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