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강원랜드 본사. 강원랜드 제공
2012∼2013년 대규모 채용비리가 드러나 225명이 채용 취소된 강원랜드에서, 과거 2000∼2009년에도 당시 지역구 의원의 보좌관 아들이나 시·군 의원, 지역 유지의 가족 등 26명이 서류전형 없이 면접만으로 채용되는 등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이들에 대한 채용비리 정황을 확인한 뒤 검찰에 수사 의뢰했지만, 시효가 지나 “공소권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채용비리 의혹은 2013년에도 한차례 제기된 바 있는데, 당시 정부와 강원랜드가 적절히 조처하지 않아 문제 해결의 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이 17일 공개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올해 4월 ‘주식회사 강원랜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를 보면, 산업부는 2000∼2009년 강원랜드에 채용된 사람 가운데 지역인사를 친·인척으로 둔 직원 58명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지역인사로는 폐광지역 고한·사북·남면 지역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 등 지역단체와 강원랜드 협력업체 임원, 지방의원과 공무원 등 40명이 추려졌다. 그 결과 조사대상 직원 58명 가운데 44명이 채용 과정에서 정해진 인사규정이나 세칙 등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6명은 단순 규정 위반을 넘어, 강원랜드에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의 인사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아 채용됐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 가운데 25명은 지금도 강원랜드에서 일하고 있다.
산업부 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서류전형 없이 면접만 거친 후 채용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등 정해진 절차를 밟지 않았다. 강원랜드 전 사외이사이자 폐광지역 주민단체 대표를 맡은 송아무개씨의 경우, 여동생과 아들, 두 처남, 두 외조카, 동서 등 가족 7명이 강원랜드에 채용됐다. 2004년 사원숙소 여자부사감으로 채용된 송씨 여동생 사례를 보면, 강원랜드는 당시 해당 부서에서 ‘부사감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자 곧바로 송씨 여동생의 입사지원서 1개만 받고 면접을 본 뒤 채용했다. 당시 송씨는 강원랜드 사외이사였다. 강원랜드 건물 청소와 경비 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ㄱ사 대표 김아무개씨의 조카도 2002년 면접만 보고 홍보 분야 정규직으로 합격했는데, 당시 채용계획과 공고문에는 홍보 분야 자체가 없었다. 2000∼20004년 태백·정선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낸 김택기씨의 보좌관 엄아무개씨 아들도 특혜채용 의혹 대상에 올랐다. 엄씨는 김 의원의 임기가 시작된 2000년 서류전형 없이 필기와 면접만 치르고 채용됐다. 이 외에도 전 삼척시의원, 전 태백시장, 지역장학회 이사장, 번영회 회장의 자녀나 부인, 처남 등의 특혜채용 정황도 드러났다.
산업부의 이번 조사는 지난 2013년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정황을 확인하고도 수수방관했다는 지적(<한겨레> 지난해 9월24일 보도 등)이 나온 뒤 진행된 것이다. 당시 국조실은 강원랜드를 감찰한 뒤 지역인사 40명, 이들을 친·인척으로 둔 직원 69명의 이름이 적힌 ‘특혜채용 의혹사례 명단’을 산업부에 보냈다. 그러나 그 뒤 국조실과 산업부 양쪽 다 사후조처를 하지 않고 사태를 방치했고 강원랜드는 부정 채용을 도운 이들을 간부직으로 승진시키까지 했다. 이훈 의원은 “정부와 강원랜드가 2010년 이전에 발생한 채용비리를 어물쩍 넘기는 바람에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이 어렵게 된 상황”이라며 “향후 강원랜드 내 인사를 통해 사회정의와 규범을 바로 세우는 조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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