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공장장 앞 반성회·‘마이 머신’ 돌발호출에 숨막혔다”
‘노조 흑역사’를 써온 포스코에 지난달 17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계열 새 노동조합이 공식 출범했다. 출범한 지 겨우 2주로, 이제 막 첫 발을 뗀 ‘새싹 노조’인데, 보수 언론들은 벌써 ‘강성’이란 딱지를 붙였다. ‘먹고살 만한 대기업 정규직들이 노조까지 한다’고 힐난하기도 한다. ‘먹고살 만할 텐데 노조까지 하게 된 이유가 뭘까?’라고 묻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대기업으로 꼽히는 포스코에서, 그것도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이 우르르 새 노조 가입서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속사정을 들여다보니, 상황이 간단치 않다. 1970∼80년대식 낡은 군대 문화, 지시와 복종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상명하복 분위기, 동원과 통제를 우선시 하는 정책 등이 ‘무노조 포스코’에선 세월을 타지 않은 상태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모습이 주목된다. 지난달 29일, “인간성이 지켜지는 일터에서 일하고 싶다”는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조합원 6명을 포항의 포스코 동촌생활관에서 만나 속 얘기를 들어봤다.
‘꿈의 직장’ 포스코였는데!…‘마이 머신’ 뒤로 숨은 회사
- 노조를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사람들은 고연봉 대기업 정규직이 노조를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
구똑똑 포항에서 나고 자라 포스코에 취직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것처럼, 포스코는 나에게도 꿈의 직장이었다. 그런데 입사하고 난 뒤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일들을 겪고 보게 됐다. 포스코에선 만사가 일방통행, 상명하복이다. 예를 들어, 저는 나인투식스(9시 출근 6시 퇴근) 주 5일제인 설비 보수 직군에 있는데, 현실은 상시 대기다. 내가 담당하는 구역에 있는 설비, 사내 용어로는 ‘마이 머신’(my machine)에 문제가 생기면 한밤중이고 새벽이고 ‘돌발’ 호출이 떨어진다. 어떤 때는 하룻밤에 2~3번이나 불려들어갈 정도로 돌발이 흔하다. 특히 잦은 부서의 직원 가족들은 한밤중 전화벨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기도 하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애가 깰까 봐 각방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김명석 교대제로 일하는 생산 쪽도 사정이 비슷하다. 조업 일정은 수시로 바뀌고, 계획에 없던 생산 스케줄이 갑자기 내려온다. 휴일에도 ‘몇시간 뒤에 출근하라’는 연락이 자주 오는데,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휴일이 지켜지지 않으니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일이 많고, 회사 시스템에는 주 52시간 이상 근무 등록이 안 되니 일부 부서에서는 ‘외상 근무 장부’를 쓰고 있다고 한다. 초과한 근로시간을 쓰는 장부인데, 정산은커녕 누적만 되고 있다. 휴가를 써야 할 때는 내 자리에서 대신 일해줄 사람을 직접 구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대기업 정규직이 왜 노조?
일방통행·상명하복 너무도 불합리
문제 생기면 공장장 방 불려가
“나는 ○○ 잘못했다” 3시간 반성
한밤중에도 휴일에도 ‘돌발 호출’
“인간성 지켜지는 곳서 일하고파” 한대정 ‘마이 머신’이란 말 자체가 포스코의 일터 모습을 상징하는 단어다. 언뜻 듣기에는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려는 단어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스템이 없다’는 얘기다. 단적으로 돌발이 잦다는 것은 애초 정비 수요가 늘 존재한다는 것인데도 그에 걸맞은 근로체계가 없다. 기계는 정기적으로 정비를 해도 쓰다 보면 중간중간 고장이 나기 마련이지 않냐. 더욱이 생산이 24시간 돌아가니, 정비도 24시간 대응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돼야 정상이다. 그렇지만 돈을 아끼려는 욕심과 ‘시키면 당연히 해야지’란 정서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몰고 있다. 마이 머신이란 용어로 초과노동을 ‘사명’처럼 만들어놨을 뿐이다. 김명석 이렇게 시스템이 아닌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한 구역을 담당하는 정비 3명이 공교롭게도 어느 날 저녁 퇴근 뒤에 전부 술을 마시는 날이 생길 수도 있잖나. 회사는 퇴근 뒤에도 술 마시면 안 된단 말은 당연히 못 하면서도, 돌발 호출은 아무 때나 한다. 그러면 취한 상태에서도 달려가야 한다. 술을 마신 셋이 서로 연락해서 누가 그나마 덜 마셨나, 이번엔 누가 갈래, 이렇게 사람을 개인끼리 일할 사람을 정한다. 이런 건 정말 위험한 거다. 음주정비라니! 당연히 하면 안되는 거다. 일부 현장에선 돌발 호출부터 현장 도착까지의 시간을 재고, 늦게 도착하면 질책을 받는다. - 수당은 나오나? 한대정 돌발엔 얼마 전까지 2만원의 고정수당을 줬다. 택시비 격이다. 돌발에 따른 오티(시간외 근무을 뜻하는 오버타임의 줄임말) 수당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수당 신청을 하는 사내 전자결재시스템에 ‘계획된 오티’, ‘돌발성 오티’ 등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돼 있는데, 돌발 오티는 신청 자체를 못하는 분위기다. 노조가 생길 분위기가 일자 최근에 갑자기 돌발 수당이 5만원으로 올라갔다.
“제가 잘못했습니다”…포스코판 인민재판 ‘반성회’
-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순 없는 건가.
황의리 포스코의 뿌리 깊은 군사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는 어렵다. 박태준 초대 회장 시절부터 ‘시키면 무조건 해낸다’는 문화가 수십년간 뿌리내려 왔다. ‘포항제철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만들어진 회사니 희생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런 식의 사명감, 애국심, 애사심 교육이 수십년 이뤄졌다. 고참급인 내 또래 노동자들은 차츰 그런 회사 분위기에 순치됐다. 회사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많이 일하고 적게 요구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 불의에 항의하면 ‘충성심 적은 모난 사람’이 되어 배척되기 일쑤였다. 우리가 지난 세월 그 문화를 못 없애서 지금 후배들이 고통받고 있다.
한대정 애초 제철소는 산업재해가 많은 위험한 곳이라, 군대식의 ‘강한 규율’이 필요하단 얘기들도 간혹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막무가내 상명하복 문화 때문에 외려 더 위험하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가 ‘고장 난 설비를 고치는 데 8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회사는 ‘어떻게든 6시간 만에 수리를 끝내고 조업 차질을 줄이라’고 지시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지시인데 수행은 해야 하면 어떻게 되겠나. 각종 편법이 동원되고 안전 문제가 불거진다.
구똑똑 포스코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군사문화가 ‘반성회’다. 어떤 작업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조가 공장장 방에 불려가 ‘나는 뭘 잘못했다’를 돌아가며 말하는 거다. 공장장의 스타일, 공장장의 그날 기분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통상 3시간 정도 진행된다. 반성회가 열리면 사무실 사람들 전체가 다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부서에서 언제 반성회가 열렸는지 소문이 금방 난다. 저는 불과 한 달 전에도 반성회하는 걸 봤다. 흔한 일이다.
신사남 심지어 잘못이 없어도 반성회가 열린다. 저는 교대제로 일하는 생산 쪽에 있는데, 야근이란 게 작업지시서를 잘 지켜도 품질 미달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애초부터 광석 안에 불순 성분이 많았다거나 하는 등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 반성회 때 ‘저는 작업기준서대로 했다’고 말했다가는 ‘너는 책대로 사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누구에게 명확한 잘못이 없어도, 결국은 잘못한 사람이 나와야 상황이 끝난다. 12시간 야간노동을 마친 뒤에 3~4시간 반성회를 하고 상처만 가득 안고 집으로 가는 거다.
구똑똑 그것 말고도 군대문화는 더 많다. 그렇게 조업일정은 마음대로 바꾸고, 무슨 일이 생겨 라인이 서면 반성회가 곧장 열리지만, 임원들이 올 때는 모든 작업을 중지시킨다. 라인이 서면, 10분 지나면 과장, 30분 지나면 부장에게 자동으로 문자메시지가 갈 정도로 조업 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높은 사람 오면 ‘야 이거 늦어도 되다’면서 생산중단 명령을 내리고 청소를 시킨다. 먼지 흩날리면 안 되니까. 임원들 거기서 사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밥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하게 하라고 한다. 군대에서 연대장이나 사단장 오기 전에 깨끗하게 청소하는 거랑 똑같다.
‘월 1회 감사편지’ ‘축구단 응원 부서 할당’ ‘휴게실 침대는 90도로’…
- 최정우 회장은 후보 시절 회사 안팎에서 조언을 듣겠다며 ‘러브레터를 보내달라’고 해 주목을 받았다. 사내 임직원을 포함해 3000건의 러브레터를 받았다고 한다. 취임 100일 시점인 11월 초엔 러브레터에 담긴 조언들을 반영한 개혁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소통에 적잖이 신경을 쓰는 것 같은데.
김시원 안타깝게도 이미 많이 본 장면이다. 소통이 잘 안되는 곳에서 꼭 그런 소원수리를 자주 하잖냐. 군대가 대표적이고, 포스코에서도 비슷한 이벤트가 많았다.
구똑똑 그럴 때마다 늘 비슷한데, 이번에도 역시나 사내게시판에 올라온 러브레터 공지 아래 선플(악플의 반대말)이 순식간에 왕창 달렸다. ‘이 어려운 시기에 회장님이 되셔서 어깨가 무거우시겠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등등. 댓글 옆엔 이름하고 부서가 다 나온다.
김명석 소통과 화합이랍시고 한달에 한번 감사편지를 쓰기도 하는데, 지시에 따라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어떻게 소통이라고 할 수 있겠나. 관리자들은 회사 앱에 있는 ‘감사편지 쓰기’에 들어가서 한달에 최소 한명의 동료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면 독촉을 한다. 이메일로 ‘현재 감사편지 실적률 62%입니다’ 이런 걸 공지하고, 월말에는 전화도 온다. 취지야 좋은데, 이걸 의무적으로 하게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고 보니, 제가 이번 달엔 아직 감사편지 안썼는데 전화가 안왔다. 노조하는 거 알고 전화 안하는 건가 보다. (웃음)
구똑똑 포항스틸러스나 전남드래곤즈 축구단 홈경기가 열리면 부서별로 응원에 동원되기도 한다. 축구 경기가 보통 수요일 저녁 7시 반 아니면 주말이다. 관리자들 따라 쉬는 날에 우르르 축구장 가는 거다. 냉연부, 제선부, 후판부, 에너지부, 해병대 응원 구역이 딱 짜져 있다. 축구장에도 부서별 배치도를 붙여놓는다. 억지로 간 것이니 관리자가 중간에 나가면, 관리자 나간 방향과 반대 쪽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기도 한다.
신사남 ‘쉬는 시간엔 숙면을 취하지 말고 가수면을 취하라’는 공지를 받은 적도 있다. 회사가 2015년에 4조 2교대를 4조 3교대로 과거처럼 되돌리려다 실패한 직후다. 당시 4조 2교대를 해보니 돈이 많이 드니까 회사는 예전의 4조 3교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비밀 투표를 해보니, 회사 안을 지지하는 사람 비중은 20% 초반밖에 안 됐다. 그러자 황당하게도 얼마 뒤 ‘휴게실 내 간이침대 180도로 펴지 말고 90도 각도로 세워서 관리할 것’이란 공지가 내려왔다. 공지엔 ‘1시간 휴게시간은 짧은 시간이니 숙면이 아닌 가수면 형태로, 눕지 말고 기대어 쉬어야 한다는 취지다. 휴게실 이용 상태에 대한 불시 모니터링이 있을 수 있다. 담요와 베개는 수거됐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직원들은 회사가 원하는 대로 안되니 복수한 거라고들 했다. 당시 직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관리자들은 여기저기로 인사이동됐다.
김명석 진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다들 먹고살기 힘들 때에 이런 얘기를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고민스럽지만, 정말 절실하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촛불로 정권교체한 뒤 바뀐 사회분위기서 용기 얻었죠”
- 무노조 포스코라지만, ‘노경협의회’란 직원 대의기구가 1997년부터 운영돼왔다고 들었다. 이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노경협의회는 뭘 했나
김시원 무기력했던 게 사실이다. 힘의 논리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포항제철소 5명, 광양 4명, 본사 1명 이렇게 10명으로 운영돼온 기구다. 회사 쪽과 뭔가를 ‘협의’할 수는 있었지만 의미있는 협상을 하지는 못했다.
황의리 그 밖에 1991년 무너진 노조를 다시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몇 번 있었지만 잘 안됐다. 많은 사람들이 1991년 노조 와해의 계기였던 노조간부 금품수수 사건은 안기부가 개입한 ‘공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판단과 별개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만큼 조직이 무너지고 말았다. 게다가 회사 문화 자체가 워낙 보수적이니 엄두를 못 냈다. 협력업체 노동자나 경비직원들이 노조를 만들다가 탄압당하는 것을 쭉 봐온 영향도 컸을 거다.
김시원 사실 사회적 분위기가 안바뀌었으면 여기까지 못왔을 것 같다. 노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야 많았지만, 보수 정부 시절엔 엄두를 못 냈다. 게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포스코는 특수 관계이지 않냐. 이명박이란 이름 석자만 들어도 우리는 참 속상하다. 하여간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정권이 바뀌었고, 그래도 이 정부는 노조 탄압은 안 하겠지 그런 기대가 작동했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탄압 관련 검찰 수사를 뉴스를 보면서도 ‘아 우리도 노조할 수 있겠다’ 싶었다. 노조를 탄압하면 수사를 받고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보여주지 않았냐.
- 그런데 왜 굳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인가
한대정 어디로 간다를 미리 정해놨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맨땅에 헤딩하듯 돌아다니면서 다 만나봤다. 우리가 뭘 알겠나. 노조는 신고를 해야 하는 건지, 우리가 법률적 지원을 어디선가 받을 수는 있는 건지, 다 처음해보는 일이니까. 지역에 변호사, 노무사들 사무실도 여러 곳 두들겼다. 그런데 돌아다녀 보니 결국 금속노조로의 접근성이 가장 좋았다. 노무사나 변호사들은 ‘당신들 도와주면 나한텐 뭐가 도움 되냐’고 묻더라. 우리가 돈 안된다는 얘기다.
김시원 (상급단체 없이) 우리끼리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만약 기업노조를 만들어서 회사가 인정해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면 금속노조에 가지 않았을 거다. 포스코의 악명높은 ‘무노조 경영’이 우리를 금속노조로 떠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노총 인연은 어떻게?
노경협의회 있어도 유명무실 수준
촛불로 정권 바뀌며 노조 결성 굳혀
금속노조 접근성이 가장 좋아 가입
회사 쪽, 중징계 운운하며 불안 조장
“갓 출범했는데, 강성 노조가 웬말” 포스코 “‘그런 반성회는 없다” 부인
돌발 호출엔 “근무시스템 개선할 것” “노사문화그룹 문건 보며 비참…그래도 노조 생긴 뒤 진짜 소통 트여” - 추석 다음날인 지난달 25일엔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노사문화그룹이 작성한 문건을 공개했다. 그 뒤 문건 내용이 부당노동행위다, 노조 조합원들이 문건을 입수한 방식은 폭행·절도라는 두 의견이 대립하는 모양새다. (관련기사 : 포스코 ‘노조 와해’ 문건 발견…카톡방 사찰 정황도) 신사남 저는 솔직히 그 문건을 보면서 좀 비참했다. 우리를 바로 쉽게 인정하겠나 싶기는 했는데, 막상 우리 회사가 정말 이렇다는 걸 눈으로 보니. 구똑똑 회사에선 노조 조합원이 사무실에 난입하고 직원을 폭행하고 자료를 빼앗아갔다는 얘기만 반복적으로 하는데, 참 속상한 일이다. ‘중징계 불가피’ 이런 말을 계속 쓰면서 불안을 조장하고, 노조가 조직되는 속도를 늦추려는 걸로 보인다. 그런데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그 문건과 관련한 언론 보도들을 본 50대 관리자 선배가 ‘그건 좀 너무하더라’라는 말을 남겼다. 회사의 문건이 나온 뒤로는 제가 유인물 나눠주는 선전 활동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선배들이 ‘너만큼 못해서 미안하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먹을 것 사다 주고 그런다. 공장 구석구석 다니며 선배들 만나 힘을 모아달라 말하고 있는데, 열이면 열 다 반겨준다. 어제는 카톡방에 57살 선배가 들어와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대신 내가 당당히 노조 가입하고 노조 가입 사실도 공개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그러자 아래 ‘선배님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자고 일어나니 그 카톡방에 또 5명이 들어왔더라. 주말 체육대회나 감사 편지로는 못만드는 소통이다. 외려 요즘 회사다닐 맛이 난다. 신사남 정말 회사 분위기가 노조가 생기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전에는 각자 자기 일만 했고 대화가 별로 없었다. 선배들은 ‘후배들이 이기적이다’ 이런 불평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용기 내서 노조 일에 앞장서는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커지면서 더 배려하게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오픈카톡방 말고도, 부서별로 삼삼오오 카톡방이 많이 생겨나는 분위기다. 한대정 분위기가 뜨겁다. 7월에 처음 생긴 카톡 오픈채팅방은 개설 직후 수백명씩 사람들이 들어왔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그동안은 할 데가 없었다가 분출구가 생긴 것이다. 노조 가입 인원은 아직 공개할 수 없지만, 목표 인원을 진작 돌파했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거창한 포부, 그런 것 없다. 일단은 각종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부터 바꿔나가면 좋을 것 같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조합원들이 같이 하는 일이다. 벌써 우리한테 강성이라고들 하는데, 태어난 지 열흘 좀 지난 노조에 벌써 무슨 성격이 있겠나. 재미있고, 유쾌하게 노조하고 싶다. 포항/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참석자(일부는 본인 요청에 따라 익명 사용)
한대정(42·새 노 조 위원장), 김명석(33), 황의리(53), 김시원(49), 구똑똑(28), 신사남(41)
지난달 17일 공식 출범한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조합원들이 회사 통근버스 대합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30대 젊은 조합원들이 많이 보인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한겨레> 주최 방담에 참여한 인물들이 전부 일치하지는 않는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한대정 지회장.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제공
일방통행·상명하복 너무도 불합리
문제 생기면 공장장 방 불려가
“나는 ○○ 잘못했다” 3시간 반성
한밤중에도 휴일에도 ‘돌발 호출’
“인간성 지켜지는 곳서 일하고파” 한대정 ‘마이 머신’이란 말 자체가 포스코의 일터 모습을 상징하는 단어다. 언뜻 듣기에는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려는 단어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스템이 없다’는 얘기다. 단적으로 돌발이 잦다는 것은 애초 정비 수요가 늘 존재한다는 것인데도 그에 걸맞은 근로체계가 없다. 기계는 정기적으로 정비를 해도 쓰다 보면 중간중간 고장이 나기 마련이지 않냐. 더욱이 생산이 24시간 돌아가니, 정비도 24시간 대응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돼야 정상이다. 그렇지만 돈을 아끼려는 욕심과 ‘시키면 당연히 해야지’란 정서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몰고 있다. 마이 머신이란 용어로 초과노동을 ‘사명’처럼 만들어놨을 뿐이다. 김명석 이렇게 시스템이 아닌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한 구역을 담당하는 정비 3명이 공교롭게도 어느 날 저녁 퇴근 뒤에 전부 술을 마시는 날이 생길 수도 있잖나. 회사는 퇴근 뒤에도 술 마시면 안 된단 말은 당연히 못 하면서도, 돌발 호출은 아무 때나 한다. 그러면 취한 상태에서도 달려가야 한다. 술을 마신 셋이 서로 연락해서 누가 그나마 덜 마셨나, 이번엔 누가 갈래, 이렇게 사람을 개인끼리 일할 사람을 정한다. 이런 건 정말 위험한 거다. 음주정비라니! 당연히 하면 안되는 거다. 일부 현장에선 돌발 호출부터 현장 도착까지의 시간을 재고, 늦게 도착하면 질책을 받는다. - 수당은 나오나? 한대정 돌발엔 얼마 전까지 2만원의 고정수당을 줬다. 택시비 격이다. 돌발에 따른 오티(시간외 근무을 뜻하는 오버타임의 줄임말) 수당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수당 신청을 하는 사내 전자결재시스템에 ‘계획된 오티’, ‘돌발성 오티’ 등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돼 있는데, 돌발 오티는 신청 자체를 못하는 분위기다. 노조가 생길 분위기가 일자 최근에 갑자기 돌발 수당이 5만원으로 올라갔다.
지난달 17일 공식 출범한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조합원이 구내식당에서 동료 노동자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포스코지회 제공
출퇴근버스 승하차장에서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조합원이 동료 직원들에게 새 노조에 대한 안내문을 건네고 있다. 포스코지회 제공
노경협의회 있어도 유명무실 수준
촛불로 정권 바뀌며 노조 결성 굳혀
금속노조 접근성이 가장 좋아 가입
회사 쪽, 중징계 운운하며 불안 조장
“갓 출범했는데, 강성 노조가 웬말” 포스코 “‘그런 반성회는 없다” 부인
돌발 호출엔 “근무시스템 개선할 것” “노사문화그룹 문건 보며 비참…그래도 노조 생긴 뒤 진짜 소통 트여” - 추석 다음날인 지난달 25일엔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노사문화그룹이 작성한 문건을 공개했다. 그 뒤 문건 내용이 부당노동행위다, 노조 조합원들이 문건을 입수한 방식은 폭행·절도라는 두 의견이 대립하는 모양새다. (관련기사 : 포스코 ‘노조 와해’ 문건 발견…카톡방 사찰 정황도) 신사남 저는 솔직히 그 문건을 보면서 좀 비참했다. 우리를 바로 쉽게 인정하겠나 싶기는 했는데, 막상 우리 회사가 정말 이렇다는 걸 눈으로 보니. 구똑똑 회사에선 노조 조합원이 사무실에 난입하고 직원을 폭행하고 자료를 빼앗아갔다는 얘기만 반복적으로 하는데, 참 속상한 일이다. ‘중징계 불가피’ 이런 말을 계속 쓰면서 불안을 조장하고, 노조가 조직되는 속도를 늦추려는 걸로 보인다. 그런데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그 문건과 관련한 언론 보도들을 본 50대 관리자 선배가 ‘그건 좀 너무하더라’라는 말을 남겼다. 회사의 문건이 나온 뒤로는 제가 유인물 나눠주는 선전 활동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선배들이 ‘너만큼 못해서 미안하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먹을 것 사다 주고 그런다. 공장 구석구석 다니며 선배들 만나 힘을 모아달라 말하고 있는데, 열이면 열 다 반겨준다. 어제는 카톡방에 57살 선배가 들어와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대신 내가 당당히 노조 가입하고 노조 가입 사실도 공개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그러자 아래 ‘선배님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자고 일어나니 그 카톡방에 또 5명이 들어왔더라. 주말 체육대회나 감사 편지로는 못만드는 소통이다. 외려 요즘 회사다닐 맛이 난다. 신사남 정말 회사 분위기가 노조가 생기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전에는 각자 자기 일만 했고 대화가 별로 없었다. 선배들은 ‘후배들이 이기적이다’ 이런 불평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용기 내서 노조 일에 앞장서는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커지면서 더 배려하게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오픈카톡방 말고도, 부서별로 삼삼오오 카톡방이 많이 생겨나는 분위기다. 한대정 분위기가 뜨겁다. 7월에 처음 생긴 카톡 오픈채팅방은 개설 직후 수백명씩 사람들이 들어왔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그동안은 할 데가 없었다가 분출구가 생긴 것이다. 노조 가입 인원은 아직 공개할 수 없지만, 목표 인원을 진작 돌파했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거창한 포부, 그런 것 없다. 일단은 각종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부터 바꿔나가면 좋을 것 같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조합원들이 같이 하는 일이다. 벌써 우리한테 강성이라고들 하는데, 태어난 지 열흘 좀 지난 노조에 벌써 무슨 성격이 있겠나. 재미있고, 유쾌하게 노조하고 싶다.
포스코 “직원 의견 들어 개선방안 마련하겠다”
포스코는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조합원들의 얘기와 관련해 2일 <한겨레>에 “직원들의 의견을 러브레터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경청해 개선방안을 수립 중에 있다”고 밝혔다. ‘반성회’에 대해서는 “그런 건 없고, 직원들이 말하는 것은 생산장애 재발방지 대책회의인 것 같다. 이 회의는 생산장애뿐 아니라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것이라 없앨 수는 없다”며 “다만, 근무시간 내에 파트장 이상급만 회의에 참여해 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퇴근 뒤에도 돌발 호출이 수시로 울린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직원 요구사항을 반영해 근무시스템 개선 논의를 할 것”이라며 “돌발 호출비와 별도로 실제 근무시간에 대한 시간 외 수당은 지급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축구경기장 동원과 관련해서는 “축구경기 활성화를 위해 표를 단체구매한 뒤 직원들에게 배부하고 있을 뿐 부서별 동원 실적을 관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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