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팀 기자 “회장님 퇴직금 계산식이요? 내부 규정이 있긴 한데 공개할 수는 없어요.” 한 기업 홍보 담당자는 ‘대외비’라고 거듭 말했다. “언론엔 공개해본 적이 없는 진짜 비공개 내부 규정”이라며 엄청난 기밀이라는 투였다. ‘공개하는 기업들은 바보냐’고 따졌지만 울림 없는 메아리였다. 주요 기업 임원 퇴직금은 법정 퇴직금 계산식(월평균 보수 총액×재직 연수)에 직급별 지급배수(혹은 지급률)를 곱해 계산한다. 롯데는 2.5∼3, 엘지(LG)는 2.5∼5, 삼성은 1∼3.5, 에스케이(SK)는 2.5∼4 등이었다. 산업팀 동료들의 취재 결과가 속속 공유되는데 유독 내가 담당하는 기업들만 ‘꽝’이었다. 5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자동차가 ‘공개 불가’를 고수했다. 공시 의무 사항도 아니다. 임원 퇴직금 규정은 공개하는 게 옳다. 상법 388조에 따라 정관에 명시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유효하다. 회사 경영진끼리 속닥속닥 결정하면 안 된다. 금융감독원 공시 규정(9-2-1)을 봐도 5억원 이상인 이사의 퇴직소득은, 총액은 물론 ‘산정 근거’도 공개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월 공개한 공시서식 작성 기준에는 ‘월 기준급여액 1천만원, 근무 기간 5년에 따른 직위별 지급률(회장직: 300%)을 곱하여 산출’이라고 돼 있다. 대다수 재벌기업은 ‘최소’ 공개를 목적으로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현대차는 1994년 임원 퇴직금 규정을 주총에서 통과시켰다고 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이라 해도 구체적 내용은 알 길이 없다. 대한항공이 2015년 회장 퇴직금 지급률을 4에서 6으로 높이는 안건을 주주총회에 올리는 과정에서 규정 전체가 공개된 것처럼, 현대차도 안건을 주총에서 다시 다뤄야만 전체를 볼 기회가 생긴다. 그 전까지는 과거 직급별 퇴직금 지급 사례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역산하는 방식으로 조각을 맞춰보는 게 알 수 있는 전부다. 코오롱의 경우 이웅열 전 회장의 전격 퇴진 선언으로 회장 퇴직금(5개 회사로부터 410억원) 지급 산식이 공개되긴 했는데, 각 계열사는 사업보고서에서 지급률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경우 “월보수 1억3300만원과 재직 기간, 직급별 지급배수를 곱해서 퇴직금 181억원을 산정”했다고만 밝혔을 뿐이다. 주주가 이 회사의 회장 퇴직금 지급률을 알고 싶다면 이 전 회장의 임원 시작 시점(1985년)을 파악한 뒤 복잡한 역산을 거쳐야 한다. 파편화된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각 내고, 숨기고, 눙치는 것은 투자 판단 자료를 투명하게 제공해 주주를 보호하려는 공시제도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대외비’에 숨는 것은 퇴직금 체계 전체가 밝혀지면 기업 내 ‘계급’ 피라미드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 염려되어서일 것이다. 퇴직금이 생계수단인 평범한 노동자들은 법에 따라 1년 일하면 한달치 급여가 퇴직금으로 쌓인다. 반면 ‘보너스’ 성격의 퇴직금을 받는 재벌 회장은 자체 규정에 따라 1년에 적게는 석달에서 많게는 반년치 월급이 쌓인다. 전문경영인 대표이사 등 그 밖의 임원들은 회장과 평사원 사이 어딘가의 지급률을 적용받는다. 이런 퇴직금 차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노동자와 주주들에게 많게는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재벌 회장의 퇴직금은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 아닐까. 실질적 책임과 권한을 지닌 전문경영인이 재벌 회장보다 퇴직금 지급률이 낮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공허했다. “에이 그래도 회장님이신데.” 아직 멀고도 멀었다. 이따금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외국 기업처럼, 경영실패 책임으로 대주주와 임원에게 퇴직 인센티브를 주지 않기로 한 이사회 결단은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이 한국 현실이다. 배임·횡령 등 회사를 망치는 범죄 혐의를 받아도 회장은 여전히 회장인 이 나라에서 말이다.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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