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가 급락 여파로 서부텍사스(WTI)산 원유 가격 변동폭을 2배로 따라가는 상장지수증권(ETN) 가격이 폭락하면서 증권사들은 시세 차익을 본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휴짓조각을 손에 쥐게 됐다.
23일 증권업계와 한국거래소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까지 1000∼2500원에 거래된 삼성·엔에이치(NH)투자·신한금융투자·미래에셋대우증권 이티엔의 실제 가격은 상품별로 100원∼700원에 불과하다. 이티엔은 더블유티아이 원유 수익률을 하루 단위로 연동한 가격(실제 가격)과 투자자끼리 사고 파는 가격(시장 가격) 두 가지를 산출하는데, 시장 가격이 실제 가격보다 10배 높게 형성됐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이 얼마에 증권을 샀든 나중에 돌려받는 돈은 실제 가격이므로 이들은 사실상 1000원을 내고 100원만 돌려받게 된다. 이티엔은 모두 거래정지됐고 거래소는 증권 실제 가격이 0원이 될 때까지 상장폐지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개인투자자들은 전액 손실이 날 때까지 속수무책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티엔의 시장 가격은 유가가 25% 폭락한 지난달 9일까지만 해도 증권 실제 가치보다 낮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저점 매수 기회로 보고 몰리면서 역전됐다. 3월10일부터 한 달 간 개인 투자자들이 4개 증권사 레버리지 이티엔을 순매수(매수액에서 매도액을 차감한 금액)한 돈은 3915억8800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산유국 감산량이 기대에 못 미치며 유가가 급락했고 이티엔 가격도 폭락했다.
증권사들이 유동성공급자 역할로 매번 200만∼2억주씩 12차례 추가 물량을 상장하고도 괴리율은 잡히지 않았고, 그 물량을 개인들이 모두 받아내고 거래 규모도 커지면서 증권사들은 운용 보수에 더해 가격 차익도 얻게 됐다. 유동성공급자들은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라 시세의 ±6%로 호가를 제시했지만 실제 체결가격은 시장가격에 가깝게 거래되면서 지표가치와의 차이가 생긴다는 지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신한금융투자가 지난 21일 유동성공급자로서 상장한 레버리지 이티엔 1억주의 시세는 905원으로, 지표가치인 562원보다 높다. 다만 증권업계 관계자는 “위험 회피를 하기 위해 뉴욕거래소에서 선물 증권을 사는 비용 및 미국과의 원-달러 차익을 고려하면 큰 돈이 남는 건 아니다”고 했다.
유가가 반등하더라도 수익 회복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일일 손실률을 2배로 따라가는 레버리지 상품은 한 번 낙폭이 커지면 예전 가격으로 되돌아가기 힘들어서다. 22일 유가가 46% 하락하자 지표가치가 80% 이상 하락한 이유다. 100원이 된 이티엔이 1000원이 되려면 단순계산해 봐도 원유 선물이 하루 만에 500% 올라야 한다. 여기에 매월 다음달 선물로 갈아타는 비용을 더하면 손실액은 더 커지게 된다. 뒤늦게 이를 인지한 개인 투자자들은 투자 게시판에 “상품 구조를 잘 몰랐다. 후회된다”고 토로하고 있다.
비슷한 상품구조를 가진 미국의 ‘3배 레버리지’ 이티엔과 이티에프는 지난달 증권사가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조기 상장 폐지했다. 한국 증권사는 상장폐지 권한이 없어 증권 가치가 0원이 되기 전까진 증권을 없앨 수 없다. 전액 손실이 날 때까지 매매도 못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현행 상장규정상 투자자 보호, 기초자산 변동 등을 이유로 거래소가 직접 상장폐지할 수 있지만 이를 실제로 적용한 사례는 거의 없다.
2014년 국내에 처음 상장된 이티엔은 실물이 없는 무담보 신용거래인데다 시장가격과 실제가격 간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 초고위험상품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상품 홍보 대비 복잡한 거래구조와 위험성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거래소는 올해 원유 선물을 3배 추종하는 레버리지 이티엔을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당분간 미루기로 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원자재는 안전자산보다 변동성이 큰 편이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3배 지수 이티엔 상장에 대해선 전체 계획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금감원도 이날 자료를 내 “원유 가격 하락 지속 시 이티엔과 이티에프의 내재가치가 급락해 큰 투자 손실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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