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거머쥔 정몽규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 회장은 미래를 낙관했다. 한달 뒤. 항공업계는 또다른 빅딜 뉴스를 쏟아냈다. 주인공은 아시아나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에이케이(AK)그룹(옛 애경). 이 회사는 그해 12월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이스타홀딩스와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그룹 내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과 합친 뒤 운용 효율을 높여 수익을 내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국내 항공산업 재편의 신호탄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현재, 두 거래 모두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인수자와 매도자 간 감정 싸움에 가까운 지루한 줄다리기만 진행 중이다. 시장에선 두 거래가 사실상 무산됐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본사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아, 코로나19
지난 2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사태는 인수자의 셈법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여객·화물 운송에 의지하는 항공산업은 타격이 가장 큰 업종이다. 아시아나항공의 1분기(1~3월) 순손실은 전 분기보다 두배 남짓 불어나 7천억원에 육박했다. 이스타항공은 3월부터 아예 전면 운항정지에 돌입했다. 업황이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상황에서, 인수자들은 언제까지 얼마나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계산기조차 두드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외부 충격’ 탓만 할 순 없다. 항공산업은 수년째 출국자 수가 정체에 이르며 ‘공급 과잉’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이스타항공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 이미 ‘부분 자본잠식’ 상태였고,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이 1300%가 넘어 외부 자금 수혈 없이는 정상 영업이 어려운 처지였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미국에서도 1978년 항공산업 진입 규제가 완화된 뒤 항공사가 우후죽순 생기다가 공급 과잉으로 인수·합병이나 파산 등의 통합과정이 있었다”며 “한국도 이명박 정부 때 엘시시가 들어온 뒤 자연스레 ‘통합’ 과정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다”고 설명했다.
■ ‘안되는 딜’의 모든 것
지난 5월 이후의 전개과정은 ‘안 되는 딜’의 특징을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인수자와 매도자는 대면 협상보다 서면 질답을 선호하며 계약상의 선행조건이 무엇인지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모습을 되풀이해서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지난 5월 초 당시 200억원가량의 체불임금 해소 책임 소재를 두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양쪽은 “체불임금을 포함한 미지급금은 이스타항공이 해소하는 게 선행조건”(제주항공)이라거나 “계약상 책임은 아니지만 도의상 최대한 노력한 것”(이스타홀딩스)이라 맞서며 줄곧 평행선을 달려왔다. 대면 협상이 이뤄지지 않은 채 제주항공 쪽은 “계약 해제 조건이 충족됐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와중에 이스타 쪽은 실질 대주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가의 지분 매입 관련 자금 출처 의혹에 휩싸였다.
아시아나 인수협상도 난맥상을 연출했다. 지난달 현산이 아시아나 채권단을 이끄는 산업은행에 인수 협상 조건의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자, 이동걸 산은 회장은 “서면 협의를 얘기했는데 60년대 연애도 아니고 무슨 편지를 하느냐”면서 상호 신뢰 부족을 짚으며 대면 협상을 요구했다. 앞서 현산은 “아시아나항공에 11차례 공문을 보내 자료를 요청했으나 신뢰할 만한 공식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아시아나항공은 매각 무산을 염두에 두고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허둥대는 중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3일 채형석 에이케이홀딩스 부회장과 이상직 의원 등을 차례로 만났지만, 이렇다할만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황용식 교수는 “업계와 정부 모두 항공산업 구조조정을 겪어보지 않았던 터라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줄곧 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 매각 무산? 그 다음은?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이 무산되면 분리매각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산은이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 등 자회사를 쪼개 팔 수 있다는 얘기다. 이스타항공은 뚜렷한 인수 후보가 없는 터라 기업회생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회생보다 청산 가능성을 더 높게 본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이스타항공 매각 무산 가능성과 관련해 “이스타항공이 비행기를 띄워야 지원을 하든 말든 하지 않겠느냐. 논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