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총수 자녀 사이의 분쟁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한달 전 둘째 아들에게 모든 지분을 넘긴 조양래(83) 회장의 ‘뜻’을 놓고 가족들이 진실공방을 벌이다 급기야 사건을 가정법원까지 끌고 가면서다. 조 회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동생이라, 2014년 효성그룹에서 불붙은 조석래 회장 두 아들 사이의 경영권 싸움과 흡사한 양상이 방계그룹에서도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를 주력 사업회사로 거느린 지주회사다.
30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조양래 회장의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조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을 서울가정법원에 신청했다. 조 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한 것으로, 지난 6월26일 돌연 동생인 조현범(48)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에게 보유 지분 23.59%(2194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로 전부 넘긴 조 회장의 결정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다. 성년후견은 노령이나 장애·질병 등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성인에게 법원이 제3자 후견인을 선임해 재산 관리 등을 돕는 제도다. 조 이사장은 “(조 회장이)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생각과 너무 다른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져 놀라고 당혹스럽다“며 “이런 결정들이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성년후견 신청은 조 사장 쪽으로 갑자기 기울어버린 후계구도 판세를 장남 조현식(50)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 쪽으로 뒤집기 위해 두 누나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이 ‘공동전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달 전엔 조 회장이 조 부회장을 제치고 조 사장에게 보유 지분을 블록딜로 넘기면서 조 사장이 최대주주 지위에 올라 승계구도가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의 손을 들어준 아버지의 지분 매도 결정에 조 사장의 음모가 개입됐다는 ‘밀실’ 의혹을 제기하면서 다른 가족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업계 일각에선 “형식적으로 장녀가 법원에 신청했지만, 사실상 조 부회장이 두 누나와 손 잡고 후계구도 판을 역전시키려는 싸움에 나섰다”고 해석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인 조 사장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은 한달 전에 아버지 지분을 전부 사들이면서 단숨에 42.9%로 늘었다. 이전 지분율은 19.3%로 형인 조 부회장과 똑같았다. 경영권 분쟁 논란과 관련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쪽은 “최대주주가 조 회장에서 조 사장으로 바뀌었지만, 두 형제가 회사를 같이 이끌어가는 기존 형제경영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며 “조양래 회장의 건강은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여전히 조 사장이 유리한 구도다. 조 부회장(19.32%)이 조 이사장(0.83%)과 누나 조희원씨 지분(10.82%)을 다 끌어들이더라도 30.97%에 그친다. 설령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공단(6.24%)의 지지를 받는다 해도 조 사장의 지분율과는 격차가 크다. 조 이사장이 법원에 성년후견을 신청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우선 아버지의 갑작스런 지분 양도 사건을 ‘밀실 회유’로 규정하고 법원으로 끌고가 조 사장의 행동에 ‘상처’를 입힌 뒤, 다음 단계로 우호지분 결집을 모색할 거라는 관측이다. 조 부회장과 조 사장은 둘 다 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조계완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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