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최종 결선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진 유명희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전 나이지리아 전 재무ㆍ외무장관이 지난 7월 15~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각각 출마 기자회견을 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 최종 선출이 일단 미국 대선(11월3일) 이후로 미뤄졌다. 164개 회원국 중에서 다수가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지지하고 WTO 일반이사회도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합의 추대하자고 제안하는 상황 속에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의 막판 ‘유명희 지지’와 미국 대선 변수라는 외부 환경 변화 속에서 과연 기적같은 막판 역전극을 펼칠 수 있을지 촉각이 쏠린다. 현재로서는 안갯속에 빠져든 형국이다.
WTO는 28일 밤 11시(한국시각·현지시각 오후 3시)께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164개 회원국의 제네바 주재 대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고 최근 10여일간 선호도 조사를 벌인 결과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더 많은 득표를 했다고 공개 발표했다. 최종 결선라운드에 오른 두 후보의 구체적인 선호도 득표 숫자는 공개하지 않은 채 “가장 선호도가 높은 쪽으로 컨센서스를 이룬(most likely attractive consensus) 쪽은 나이지리아 후보“라고 공표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 관계자는 “WTO의 전통과 관례상 상대 후보의 자존심을 고려해 두 후보의 구체적인 득표 숫자는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외신에 따르면, 제네바 안팎에서 흘러나온 선호 지지도는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164개 회원국 중에서 대략 96~104표 정도를 획득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정부 쪽은 “선호 후보를 제시하지 않고 기권한 국가가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이날 회원국 대사급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무총장 선거를 관장하는 3명의 트로이카(데이비드 워커 WTO 일반이사회(GC) 의장·다시오 카스티요 분쟁해결기구(DSB) 의장·하랄드 아스펠륀드 무역정책검토기구(TPRB) 의장))와 유럽연합(EU·27개국)·중국 등 일부 회권국들은 더 많이 선호 지지를 획득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사무총장으로 최종 추대하자는 뜻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러자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견을 발언하고 ‘유명희 지지’를 사뭇 강력하게 밝히면서 국면이 급박하게 바뀌었다. 키스 록웰 WTO 대변인은 전체 회원국 회의 뒤에 기자들에게 “한 대표단이 (회의에서) 오콘조이웨알라의 입후보를 지지할 수 없으며 계속해서 한국의 유명희 본부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표단은 미국이었다”고 밝혔다. 미국이 오콘조이웨알라 추대를 반대하고나서자 WTO 의장단(트로이카)은 “오는 11월9일까지 최종 선출자를 추대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것으로 알려진다. WTO 사무총장은 모든 회원국의 컨센서스(의견일치)를 얻어야 최종 선출된다. 따라서 미국은 물론 한국·나이지리아까지 최종 추대 후보에 동의해야 한다. 사실상 미국 대선 직후까지 시간을 일단 열어두고 협의를 더 진행해보자는 것이지만, 11월9일로 미룬 건 미국과 한국을 계속 설득해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9일 청와대·외교부·통상교섭본부 등은 WTO 총장 선거 대응 범정부 태스크포스(TF·팀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회의를 열어 향후 대응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관계자는 “외부 환경 변화가 유동적이다. 더 지켜보자. 우리는 제네바에서 최종 컨센서스를 이뤄가는 협의 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국을 봐가면서 합리적이고 유연하게 우리의 입장을 판단·결정해가겠다”고 말했다. 28일 밤에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가 아직 물러서지 말고 더 지켜보자는 뜻을 밝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나이지리아 후보 쪽으로 기우는 듯하던 선거전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무역대표부(USTR) 성명까지 내면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권(비토)을 행사하고 유명희 본부장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WTO 조직이 무력화된 채 기능 부전에 빠져 표류하게 된 주요 책임 당사국으로 지목돼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WTO 탈퇴를 위협하고 다자·자유무역주의를 위협하는가 하면 WTO 내 최종 상소기구 위원 선임에 계속 반대해 상소기구 기능이 중지대 있는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USTR이 ‘유명희 지지’를 선언하자 유럽연합 쪽은 “미국이 비토로 WTO의 혼란을 야기하고 WTO를 파괴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지지가 우리로서는 어떤 의미에서 딜레마같은 상황이기도 한 셈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미국의 유명희 지지가 유럽연합과 다른 회원국들을 설득해 유명희 쪽으로 뒤집는 ‘캐스팅 보트 권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조 바이든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 상황이 급변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이든이 지지도 열세가 확인된 유명희 본부장을 사무총장에 앉히기 위해 대선이 끝나자마자 ‘미국 권력’을 행사하고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우리 후보 지지가 막판 컨센서스 합의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지, 어떤 영향을 줄지 신중히 따져봐야할 것같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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