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적 배제가 시행 중인 11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10일 닻을 올린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정책 변화를 대대적으로 예고했지만, 정책 목표와 수단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된 주택 관련 정책을 뒤집는 데 치중한 탓에 집값 ‘안정’을 우선순위로 내세우고도 집값 ‘상승’을 부추길 각종 규제 완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는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를 기조로 하는 주택 정책이 여럿 나열됐다. 5년간 250만호 공급과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세 부담 완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대출 규제 완화, 분양가상한제·재건축 부담금·안전진단 등 재개발·건축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와 반대로 가겠다’는 큰 틀의 방향만 제시됐을 뿐, 구체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가령 공급 목표 규모인 250만호가 신규 인·허가 물량 기준인지, 현재 시점에서 순증되는 규모인지 불분명하다. 현실적으로 서울 등 수도권 주택 공급은 기존 주택을 허물고 새로 만드는 방식이 많을 수밖에 없어 신규 인·허가 주택이 늘어도 순증 주택은 그보다 적을 수 있다. 또 다주택 양도세 중과가 10일부터 1년간 한시 배제됐지만, ‘매물 출현’의 또다른 열쇳말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세제 개편 방향과 시행 시기는 특정하지 않았다. 주택 임대시장 향방의 최대변수로 떠오른 ‘임대차 3법’에 대해서도 “폐지에 가까운 근본적 개선”(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2일 인사청문회)이란 방향만 제시됐다.
이강훈 참여연대 부집행위원(변호사)은 “지난 5년 무엇이 집값 상승을 부추겼느냐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진단과 그에 따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1기 신도시 특별법을 두고 6·1 지방선거용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처럼, 자칫 정치적 목적으로 인기를 얻으려는 정책을 열거만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제시된 국정과제들이 집값 상승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 후보자는 인사 청문회에서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표'로 “단기적인 집값 하향 안정”을 내세웠다. 그러나 각종 ‘규제 완화’ 신호등이 켜지자, 지난해 말부터 안정세를 보였던 집값은 지난 3월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꿈틀거리는 모양새다. 지난 9일 한국부동산원 아파트값 동향조사에서 서울 아파트값은 4월 초부터 다시 보합세로 돌아섰다.
새 정부가 집값 안정, 매매 시장 활성화, 서민·무주택자 주거 안정 등 여러 정책 지향점 가운데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집값 안정과 시장 활성화가 충돌하는 지점이 있는데다가, 전체 가구의 40%를 웃도는 무주택 임차 가구에 대한 대책은 더욱 불투명하다. 다주택 양도세 중과 한시 유예가 매물을 일부 끌어낼 수는 있지만 이 과정에서 임차 계약을 종료하거나 갱신하지 않는 경우가 늘면서 전세 공급이 줄고 전셋값은 높아질 우려가 있는 것처럼 매매 시장과 임대차 시장의 역학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과)는 “공급 활성화와 주거 안정은 다른 이야기”라며 “(연평균 10만호 공급 목표인) 공공임대주택 규모를 키워야 하는 것은 물론, 계약갱신청구권을 한차례 쓴 임차 가구를 위한 대책도 추가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임대차 3법을 폐지하면 또 한번의 전셋값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임대 시장 안정화를 위해 법 폐지보다는 보완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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