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종일 다녀도 물건 구경도 못해
다주택자, ‘8·31’ 눈치 보며 매물 꺼려
5월 청약 결과 발표뒤 해소 전망도
다주택자, ‘8·31’ 눈치 보며 매물 꺼려
5월 청약 결과 발표뒤 해소 전망도
“판교 당첨 위해” 집 팔고 전세로 우르르 “아파트 전세 있죠? 인터넷 보고 찾아왔는데.” “아 그거 아직도 (인터넷에서) 안내렸어요? 나간 게 언젠데 …. 이동네 요즘 전셋집 구경하기 힘들어요.” 다음달 결혼을 앞둔 서지훈(31)씨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준비해야 할 건 많은데, 가장 큰 짐인 집을 못 구했기 때문이다. 서씨는 “지난주 하루 휴가를 내고 출퇴근이 편한 전철역 주변을 중심으로 서울 시내를 종일 돌았지만, 전셋집 구경은 단 3곳밖에 못했다”고 허탈해했다. 그나마 오래된 아파트에, 전셋값도 서씨가 알아본 시세보다 1~2천만원씩 올라 있었다. 서씨의 전셋값 예산은 8천만원인데, 중개업소에선 가는 곳마다 “그 돈이면 다세대나 빌라를 알아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처가에서 ‘아파트’를 고집하고 있어, 서씨는 아예 주택담보 대출을 끼고 소형 아파트를 사버릴까 고민 중이다. 서울 신림동에 소형 아파트를 갖고 있는 최정길(40)씨도 전셋집을 못얻어 골치가 아프다. 지방 근무가 끝나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됐지만, 판교에 청약을 해 볼 생각으로 우선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자신이 알아보고 있는 28평~30평 정도 전셋집은 그야말로 ‘품절’ 상태다. 지난 주말 봐뒀던 전셋집은 하루 고민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계약을 했다. 최씨는 “중계업소에서 ‘그자리에서 계약하지 않으면 전세 구하기 힘들다’는 핀잔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서씨와 최씨의 경우처럼 서울 시내에서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전셋집이 씨가 말랐다”, “지하철역 주변 왠만한 아파트 단지에선 전세 매물 구경하기조차 어렵다”는 아우성이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을 채우고 있다. 30평대 중형뿐 아니라 신혼부부나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15~28평대 소형도 자취를 감췄다. 새로 입주하는 강남 중·대형 아파트들은 전세 매물에 약간 여유가 있지만, 가격이 너무 올라 웬만한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전셋값 오름세가 큰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부동산중개소 앞에서 12일 한 시민이 주택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본격적인 이사철이 이미 지났는데도 전세물건 품귀와 가격상승 현상이 한꺼번에 나타나면서 무주택 서민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전셋값도 서울을 중심으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국민은행이 조사한 2월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0.4%로, 13개월째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정부 공인 주택가격 조사가 시작된 뒤 1987~88년 20개월 상승세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기간이다. 사당동에서 중개업을 하는 최진숙씨는 “아직까지 전셋값 폭등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연초부터 오름세가 심상치 않아 세입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선 중계업소에서는 “최근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몇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한꺼번에 겹쳤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로또가 돼버린 ‘판교 분양’이 전세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불렀다. 주택 구입을 고려하고 있는 전세 세입자들이 “일단 판교 한 번 넣어보고 결정하자”며 모든 계획을 판교 이후로 미루고 있다. 세입자들은 나가질 않고, 기존 소형주택 소유자들마저 집을 팔아치우고 전세를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판교에 청약할 수 있는 서울과 수도권 청약통장 가입자는 모두 496만명에 이른다. 다주택 보유자들도 8·31 대책의 효과를 지켜본 뒤 주택처분 시기를 결정하겠다며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 주택을 새로 사려는 사람들도 주택값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기대감 속에 관망세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청약제도를 무주택자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정부 계획도 주택수요 감소요인으로 작용한다. 봉천동 하나공인 김정수 사장은 “요즘 집부자들이 전셋값을 굴릴 방법이 마땅치 않아 월세로 돌려달라는 요구가 많은데, 이런 것도 전셋집 부족의 한 이유”라고 말했다. 송파구나 동작구처럼, 재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의 원주민들이 한꺼번에 인근 전셋집을 장악해 물량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도 있다. 한편, 최근 전셋값 상승을 두고 “물량 부족 원인 외에도 8·31 대책의 여파”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다주택 보유자들에 대한 세부담이 늘면서 이를 재계약 때 세입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급격하게 오른 집값 상승분이 이사철을 맞아 반영된 탓도 크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판교 청약 결과가 나오는 5월이 지나면 물량 부족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면서도 “8·31 대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고 세입자들의 전세부담으로 전가될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 질 것”으로 내다봤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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