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부동산값, 몇년 사이에 땅값은 3배 오르고 급기야 주부들은 은행빚까지 내어 골프장 회원권을 사들였다.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는 사람들에게 버블 붕괴 경고는 철저히 무시됐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것처럼 보이는 이 풍경은 버블이 꺼지기 직전인 1980년대 말의 일본 모습이다.
일본·영국 등 버블을 겪은 나라들을 보면, 장기간에 걸친 부동산가격 급등은 급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과거 일본의 버블 붕괴 과정과 요즘 미국·영국·호주 등의 부동산 가격 하락 움직임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일본은 우리 부동산시장과 유사점이 많아 더욱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너무 오르면 급락한다=버블경제의 추락을 극명하게 보여준 일본은 엔화를 대폭 절상(달러당 250엔→100엔)하기로 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86년 1월에서 87년 2월 사이에 5%이던 금리를 2.5%로 내려 초저금리 시대에 돌입했다. 이때부터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확대해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87년 한해 도쿄의 지가상승률은 무려 68.8%에 달하는 등 86~90년 사이에 6대도시 땅값은 3배 올랐다. 도쿄의 70㎡ 규모의 콘도 평균가격은 80년대 초에는 2500만엔에 불과했으나, 91년엔 7천만엔으로 치솟았다.
대도시의 지가급등은 급기야 지방도시로 확산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의 기획부동산처럼 폭력조직 야쿠자가 땅값 끌어올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다급한 정부는 금리를 2배(2.5%→6%) 이상 올리고 ‘부동산 관련 융자의 총량규제 제도’를 도입하는 등 달아오른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극약 처방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일본은 이후 ‘10년 장기 불황’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버블이 붕괴된 91년 이후 10년동안 주택지는 최고 60%, 상업지는 80% 폭락했다. 금융권의 부실채권도 급증해 94년 10조엔, 95년에 30조엔에 달했다.
영국은 80년대 들어 임대주택을 민영화하고, 주택금융 규제를 완화하면서 주택가격이 급등한다. 85년 8.6%였던 집값 상승률은 88년 26.5%, 89년 18.4% 로 그 폭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91년 들어 주택가격이 급락하면서 이해에 755만채가 경매시장에 나온다. 당시 영국에선 3채당 1채꼴로 경매시장에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시장과 한국시장의 유사점=일본과 한국의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닮은 것은 시장 참가자들이‘부동산 불패신화’를 믿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구본관 연구원은 “일본의 경우 버블 직전까지도 버블의 존재를 부정하는 견해가 일반적이었고, 오히려 자산가격 상승이 경기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의 외형적 형태도 수도권 핵심지역에서 출발해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는 추세여서 비슷하다. 우리는 강남에서 출발해 서울, 수도권을 거쳐 지방으로, 일본은 도쿄 도심에서 시작해 지방으로 확산됐다. 일본은 대도시의 오피스 가격이 주도했고, 한국은 서울 일부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버블을 주도하고 있다. 저금리 아래서 부동산 대출이 늘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더욱이 버블 붕괴를 믿지 않는 바람에 정책도 실기를 거듭했다. 당시 일본의 정부의 정책은 안이하고 뒤늦은 미봉책이 주였다. 삼성경제연구소 쪽은 “일본의 부동산대책은 적기에 투기수요를 차단하면서 문제가 커졌을 경우 금리나 통화정책 등을 구사하는 등의 정공법을 쓰지 않았고,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는 정부 의지도 약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거래를 총체적으로 규제하는 종합대책은 거품이 꺼지기 직전에 나왔다. 국민들도 정부보다 부동산을 사면 오른다는 불패신화를 더 믿었다.
일본 경제기획청은 ‘93년 경제 백서’에서 “거품은 한번 발생하면 자산분배를 불평등화해 자원 배분을 비뚤어지게 하는 등 경제적으로 큰 비용을 가져온다. 거품의 생성과 붕괴의 과정을 통해 보면, 거품에 경제적 장점은 없고 있는 것은 결점 뿐이다”라고 적었다. 허종식 기자 jongs@hani.co.kr
일본 경제기획청은 ‘93년 경제 백서’에서 “거품은 한번 발생하면 자산분배를 불평등화해 자원 배분을 비뚤어지게 하는 등 경제적으로 큰 비용을 가져온다. 거품의 생성과 붕괴의 과정을 통해 보면, 거품에 경제적 장점은 없고 있는 것은 결점 뿐이다”라고 적었다. 허종식 기자 jo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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