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이 기준금리 결정에 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글로벌 증시 반등에도 투자자들의 마음은 별로 편하지 않은 것 같다. 주가가 올라 오히려 저평가 매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편함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고물가, 긴축, 경기 후퇴라는 기본적인 구도가 바뀌어야 할 텐데, 아직 조짐이 뚜렷하지 않다.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전달의 9.1%보다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8.5%로 연방준비제도의 목표를 크게 초과하고 있다. 6%대로 올라선 한국 물가 상승률 역시 추석을 앞두고 더 들썩이는 모습이다.
물론 투자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고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다. 중앙은행들 역시 심한 경기 침체는 피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조금 낮아졌다는 점만으로도 다음달 정책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조금 바뀌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실물경제다. 아직까지는 약간의 둔화 정도 외에 경기 침체 징후가 뚜렷하지 않지만,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긴축이 시작돼도 이미 대출을 받은 사람의 이자 부담은 시간에 걸쳐 올라가는데, 이렇게 보면 올해 상반기에 집중된 빠른 긴축의 효과는 올해 하반기 말로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내린 폭의 20~50%를 되돌린 주가 하에서, 경기 후퇴의 폭도 가늠할 수 없는 지금, 편안한 마음으로 주식을 살 수 있을까?
한국 투자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벌써 국내에서는 2개월째 부동산 시장의 둔화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는데, 앞으로 기존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계속 늘어나면 둔화의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부동산 관련 세금이 조금은 경감되는 분위기지만, 아직 뚜렷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 세후 기대수익률 측면에서 부동산 투자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또 다른 대안이 있다. 바로 채권이다. 특히 우량 회사채는 여러 측면에서 이 시기를 어느 정도 슬기롭게 넘기는 투자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들어 이전 전망보다 긴축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국채 금리도 급락하긴 했지만, 회사채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중순 현재 3년 만기 AA- 등급 우량 회사채 금리는 4.1%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6월 하순의 4.4%대보다는 낮지만 같은 만기의 국채 금리보다는 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회사채 금리 고점 당시에는 그 차이가 0.7%포인트 정도였다. 게다가 카드사와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업체가 발행한 채권 금리는 같은 AA 등급에 만기가 더 짧은데도 우량 회사채보다 더 높은 4% 중반에서 5% 내외까지 형성되어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회사채나 여신전문업체 금리도 국채 금리처럼 기본적으로는 통화정책과 물가 등의 영향을 받지만, 경기 후퇴기가 되면 상대적으로 더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고, 여신전문업체들의 자산 건전성 역시 악화하기 때문에 이런 평가는 정당하다. 더 높은 금리는 그 만큼의 불안감을 가격으로 환산한 위험 프리미엄인 것이다.
하지만 위험이 커지는 것과 실제 부도가 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AA 등급 회사가 그 등급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일정 기간 어려움을 겪어도 부도가 나지 않을 만큼 안정성을 인정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연초 AA등급을 부여 받은 상태에서 그 해에 부도가 난 회사채는 없었고, 등급 변화까지 포함하는 10년간 누적 부도율 역시 0%로 나타난다. 과거의 기록이 미래의 안전성을 100%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국채처럼 나라가 지급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AA등급 회사채를 매수해서 원리금을 돌려받는 데 실패할 확률은 매우 작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재 금리 수준이 앞으로 예상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평균보다 낮을 가능성은 있다. 지금의 경우 3년간 평균 물가 수준이 4.1%를 넘으면, 물가를 감안한 회사채 실질 투자수익률은 0%인 것이다. 지난 1년간 물가 상승률이 6%대고 당분간 높은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고 물가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 이 수익률은 플러스가 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시장금리가 떨어져 채권에서도 자본이득이 생길 수 있다. 위험자산만을 고집했던 투자자들도 회사채 투자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최석원 |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