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 백악관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냉랭한 관계를 이어온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다고 <뉴욕 타임스>가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산유국들 모임인 ‘오펙(OPEC) 플러스’는 기존 석유 증산 규모에서 50%를 추가 증산하겠다고 밝혀, 미-사우디 관계 개선과 유가 안정 노력이 맞물리는 양상이다.
이 신문은 미국 행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스페인 및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기회에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도 들를 계획이라고 했다. 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가 예정된 리야드에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인 2020년, 2018년에 발생한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을 성토하며 사우디를 “외톨이”로 만들겠다고 발언해 빈 살만 왕세자와의 관계가 틀어졌다. 빈 살만 왕세자가 유력한 암살 배후로 지목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건에 연루된 사우디인들을 입국 금지하기도 했다. 이에 사우디는 석유 증산 요구에 응하지 않는 등 동맹 관계인 미국의 애를 태웠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은 대외 관계에서 ‘도덕’을 앞세워온 그가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대처를 위해 이해를 우선시하는 ‘현실정치’ 노선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행정부 안팎에서는 석유 증산을 위해서는 그가 사우디를 방문해 빈 살만 왕세자를 직접 달래는 수밖에 없다는 제안이 나왔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계획에 맞춰 양국 관계의 급속한 해빙 양상도 나타났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산유국 모임인 ‘오펙 플러스’는 7~8월에 하루 64만8천배럴씩 추가 증산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루 43만2천배럴씩이던 증산 규모를 50% 늘린 것이다. 사우디가 개입해온 예멘 내전 당사자들이 두 달 간 이어진 휴전을 두 달 더 연장하기로 한 것도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례적으로 사우디를 칭송하는 성명을 잇따라 내놨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오펙 플러스의 중요한 결정을 환영한다”며 “사우디가 주도하는 산유국들이 이번 합의를 위해 역할을 한 것을 안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예멘 휴전 연장에 대해 “사우디가 용기 있는 지도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추가 증산 발표 직후 잠깐 꺾이는 듯하던 유가는 다시 상승세를 타 증산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117.61달러로 1.1%, 서부텍사스유는 116.87달러로 1.4% 올랐다. 미국 원유 재고가 시장의 예상인 130만배럴을 훨씬 뛰어넘어 510만배럴 감소했다는 발표의 영향이었다.
또 러시아의 원유 공급량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하루 100만배럴씩 감소해, 이번에 발표된 증산 규모로는 충분히 벌충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연말까지 90% 줄이기로 한 것도 유가를 자극할 수 있다. 미국의 석유 관련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앤드루 리포는 “오펙 플러스가 시장 예상보다 조금 더 많은 증산에 합의했지만, 이미 기존 쿼터에서 하루 200만배럴 이상 적게 생산해왔기 때문에 실제 추가 공급되는 물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자은행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1일 뉴욕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경제에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탓에 유가가 배럴당 150~17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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