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15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제다/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가를 안정시켜달라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산유국들과 함께 대규모 감산을 결정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맹국들끼리 쓰기 어려운 표현을 사용한 점에서 그의 사우디에 대한 분노의 수준이 드러날 뿐 아니라, 이 문제가 또 다른 파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각) 방영된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오펙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오펙 플러스’가 11월부터 하루 200만배럴씩 감산하기로 지난주에 결정한 것을 두고 “사우디가 러시아와 함께 한 행위에 어떤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무엇을 고려하고 마음속에 무엇을 갖고 있는지까지는 말하지 않겠다”면서도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거듭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와 함께 사우디에 대한 조처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보며, 그 관계가 필요한 위치에 있는 것인지와 국가 안보에 기여하는지 따져보려 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보복 조처로는 사우디에 대해 쓸 수 있는 가장 큰 지렛대인 무기 판매와 안보 협력 축소가 거론된다. 민주당 소속인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전날 사우디에 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며, 무기 판매를 가로막을 수 있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 국가들과 함께 이란군의 공습 가능성에 대비하는 실무그룹 회의 불참 의사를 사우디에 통보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는 11월8일 중간선거를 목전에 두고 원유 감산이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휘발유 값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인 원유 가격을 띄우는 데 사우디가 동참한 것에 대한 배신감도 묻어난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산 석유 가격 상한제까지 추진하며 러시아의 ‘전쟁 금고’에 타격을 가하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체면이 크게 깎인 것도 반발 배경이다. 그는 2020년 대선 때 2018년 발생한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고유가 문제가 심각성을 더하자 원유 증산에 대한 협조를 구하려고 올해 7월 사우디를 방문해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는 구차한 모습을 연출했다.
중간선거에서 상원만이라도 지키려고 총력전을 펴는 미국 민주당 쪽의 반발도 매우 거세다. 리처드 더빈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푸틴과 사우디가 함께 미국에 맞서고 있다”고 <시엔엔>에 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사우디의 석유 가격 담합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안 추진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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