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트럼프내셔널골프장을 떠나며 차창 밖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팜비치/AFP 연합뉴스
숱한 법적 위기를 모면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결국 기소됐지만 지연전을 펼치며 악재를 내년 대선을 위한 호재로 만들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소 직후 지지율이 급상승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 당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가족 등과 저녁을 먹으며 “화나고 기분이 상한” 모습이었다고 이 모임을 아는 관계자를 인용해 1일 보도했다.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 대배심은 2016년 대선 직전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성관계 입막음용으로 13만달러(약 1억7천만원)를 준 것과 관련해 지난 30일 그를 기소했다.
기소당한 첫 미국 전직 대통령인 그는 4일 검찰에서 지문 채취와 피고인 사진 촬영에 응한 뒤 법원에서 기소 내용을 듣고 유죄 인정 여부를 밝히는 기소인부절차를 밟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호인 조 타코피나는 죄가 없으니까 유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가 일반 피고인들과 달리 수갑을 차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판을 길게 끌어 내년 대선과 연계시키면서 최대한 정치적 이득을 노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맨해튼 검찰에서 30년을 일한 캐서린 크리스천은 “그는 재판을 미루고 또 미루려고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재판을 끌면서 공화당 경선과 대선 본선에서 ‘정치 탄압’ 프레임을 적극 이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는 기소 직후 24시간 동안 400만달러(약 52억원)가 모이는 등 후원금이 “믿기 어려울 만큼 급증했다”고 밝혔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이들의 적인 급진 좌파가 역겨운 마녀사냥으로 나를 기소했다”며 후원금을 요구하는 페이스북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가 수난을 강조하려고 수사기관에서 찍는 ‘머그샷’이라는 피고인 사진의 공개를 원한다는 말도 나온다.
공화당 내 유력 경쟁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 주지사와 격차를 크게 벌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기소에 따른 세 결집 효과를 보여준다. 기소 직후 공화당원들과 공화당 지지자 1089명을 상대로 한 조사의 일대일 대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7%의 지지로 디샌티스 주지사(31%)를 크게 앞섰다. 10여일 전 조사에서는 47% 대 39%였는데, 이번에 같은 조사에서 격차가 가장 커졌다.
재판 지연은 입막음용 돈과 관련해 장부 조작과 선거법 위반 죄가 인정될 경우 징역 1~4년형에 처해질 가능성에 대비하는 의미도 있다. 대통령이 되면 형 집행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검찰에 이어 법원도 공격하며 법정 밖 공방도 거셀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기소인부절차를 주관하고 이후로도 재판을 감독할 것으로 예상되는 후안 머천 뉴욕주 대법관 대행에 대해 소셜미디어로 “나를 미워한다”고 비난했다. 머천 판사는 올해 1월 트럼프 전 대통령 소유 기업들에 탈세를 이유로 벌금 160만달러를 선고했다.
이런 가운데 <블룸버그>는 변호인들이 심리 법원을 맨해튼에서 뉴욕시 관할 중 보수색이 짙은 스태튼아일랜드로 옮겨달라고 요청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태튼아일랜드라면 법원이 소집할 배심원단이 맨해튼보다 유리하게 구성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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