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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윤 대통령 미국땅 밟기도 전에 ‘반도체 청구서’ 날린 백악관

등록 2023-04-24 11:16수정 2023-04-25 11:25

외신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하면 한국이 부족분 채우지 말라 요구”
로이터 연합뉴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중국 정부가 메모리칩 반도체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을 제재하면 삼성전자나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부족분을 메우지 못하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미국이 중국과 벌이고 있는 전략 경쟁의 한복판에 한국을 ‘소총수’로 내세우겠다는 것으로 정부와 업체들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23일 백악관과 한국 대통령실의 논의에 대해 아는 소식통 4명을 인용해 미국이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한국 정부에 이런 요구를 했다고 전했다. 중국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은 앞선 지난달 31일 “중요 통신 기반시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마이크론 제품에 대해 사이버 보안 심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론(지난해 시장점유율 19.2%·영국 옴디아)은 삼성전자(38.7%), 에스케이하이닉스(20.4%)와 함께 세계 디램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3분하고 있는 업체다. 미 상무부가 지난해 10월 중국에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한 데 대한 맞대응 카드라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이 실제 마이크론 제품의 구매를 중단하면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미국 대기업을 상대로 처음 보복에 나서는 게 된다. 그러면 지난해 매출 308억달러(약 40조9763억원) 가운데 중국 본토와 홍콩 판매가 25%를 차지하는 마이크론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의 요구는 실제 중국이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단하면 ‘한국 업체들이 중국 쪽 부족분을 메우지 않게 독려해달라’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중국이 마이크론을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지렛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이 요구의 의미를 설명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백악관의 요구는 윤 대통령이 국빈방문을 위해 24일 워싱턴에 도착하는 것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전달됐다고 했다. 나아가 미국이 중국에 대한 대응에 공조하는 동맹국 기업한테 역할을 하도록 요구한 첫 사례로 윤 대통령을 복잡한 처지에 놓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이번 방문을 통해 미국에서 좀 더 명시적인 안전 보장과 경제적 우대 조처를 끌어내려 했지만,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오게 될 위기에 빠진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노력해왔다. 이를 상징하는 움직임이 지난해 10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첨단 반도체와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조처였다. 또 12월에는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 양쯔메모리를 수출 통제 명단에 올려, 미국 정부 허가 없이는 기술을 제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3월 말엔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들한테 보조금을 지급하는 ‘칩과 과학법’(반도체지원법·지난해 8월 제정)의 보조금 ‘가드레일’에서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업체가 보조금을 받으면 중국에서 10년간 5% 이상 생산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모든 조처가 중국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춘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경영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 업체가 아무 문제 없이 팔던 반도체를 한국 업체한텐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와 ‘경제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중국 생산시설은 미국 반도체 제조 장비 판매 금지 대상에서 올해 10월까지 일단 예외를 인정받은 상황이다. 미국이 이런 지렛대를 쥔 상태라, 마이크론이 제재를 받으면 중국에 판매를 늘리지 말라는 요구는 한국 업체들에 큰 압력이 될 수 있다.

중국은 강력히 반발했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미국은 자신의 패권과 사익을 지키려 강권적으로 디커플링(탈동조화)과 망 단절을 추진하고, 동맹국에 미국의 대중국 억제에 협조하라는 협박까지 불사한다”며 “이런 이기적인 행동은 인심을 얻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결연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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