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4일 오후 미국을 국빈방문하기 위해 서울공항에 도착해 전용기 탑승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한-미 정상회담 방미길에 올랐다. 이번 회담에 대해 국민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큰 게 사실이다. 미국은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무리한 경제적 요구를 하고 있는데, 대통령실은 기대 수준을 낮추려는 듯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 지원법이 이번 회담 주요 의제가 아니라고 하는 등 경제 분야는 미리 포기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관련해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금지했고,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회사들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중국 내 생산을 10년간 5% 이상 확대하지 못하도록 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은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판매 금지 대상에서 올해 10월까지만 유예를 받은 상황이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2020년에 90억달러를 들여 인텔의 다롄공장 등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했는데, 10월 이후에는 이곳에 첨단 장비를 들여놓지 못하는 것이다. 또 미국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접근 허용과 회계자료 제출 등 기술과 영업비밀 공개를 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명확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우리 기업에 그렇게 피해가 크지 않은 방향으로 운영돼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회담 주요 의제로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제발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길 바란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23일 보도한 미국 메모리칩 반도체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관련 뉴스는 우려를 더욱 키운다. 중국이 마이크론을 제재할 경우, 한국 업체가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게 해달라고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대중국 공세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도청 의혹에도 아무런 항의도 않는 윤 대통령이 이런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고 반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할 일은 미소 띠며 악수하고 한-미 동맹만 반복하는 게 아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을 보호할 구체적 조처를 얻어내야 하고, ‘우리가 미국에 이만큼 협조하고 투자해줬으니, 미국도 성의를 보이라’고 압박도 해야 한다. 필요하면 이번 방미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도 지렛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회담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