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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 “3국 협의 공약은 ‘의무’”…문서에도 없는 내용 강조, 왜

등록 2023-08-20 17:58수정 2023-08-21 02:43

한·미·일 정상들이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미·일 정상들이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각)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직후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장에 서자마자 “내가 행복해 보인다면 행복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대단한 회담이었다”며 대만족을 표시했다. 뉴욕타임스도 이번 정상회의의 성과에 대해 “미국 외교의 꿈이 실현됐다”는 표현으로 정리했다.

미국이 환호하는 것은 자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재편할 의도와 능력을 함께 지닌 ‘유일한 경쟁자’로 지목해온 ‘중국 억제’를 외교의 최우선 순위로 정하면서 공을 들여온 ‘한·미·일 안보 협력 프레임워크(틀) 구축’이라는 목표가 마침내 실현됐기 때문이다. 정상회의의 핵심 합의 사항인 △정상들 및 외교·국방 장관 등의 회담 정례화 △위기 시 ‘협의 공약’ △다영역 연합 군사훈련 실시 정례화 등이 모두 이 목표를 위한 것이다. 길게 본다면, ‘한-일 화해→한·미·일 공동 안보틀 구축→중국 견제 강화’라는 목표는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고 토니 블링컨 현 국무장관이 국무부 부장관이던 2010년대 중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추진돼온 미국 외교의 거대한 숙원 사업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등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자신들의 외교적 성과를 강조하려는 듯 합의 문서에 명시되지 않은 것을 주장하거나 내용을 확대 해석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번 합의의 성격은 ‘반중국’이나 ‘태평양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추진이 아니라면서도 한·일을 대중 전선에 더 깊숙이 끌어들여 견제의 첨병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구체적으로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정상회의 전날 브리핑 때 공동성명 격인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 나오는 “위협에 대한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서로 신속하게 협의한다는 공약(Commitment to Consult)”이 의무(duty)임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는 새로운 국제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나라한테는 위협이 아니니까 세 나라 간에 정보 공유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문서화한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이라는 짧은 발표문을 봐도 이것이 한-미, 미-일 상호 방위 조약을 대체하지 않고 “국제법 또는 국내법하에서 권리 또는 의무(obligation)를 창설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한국어로 ‘의무’라고 옮길 수 있는 ‘obligation’은 ‘duty’보다는 법적 준수 책무를 더 강조하는 뉘앙스가 있다. ‘협의 공약’의 확대 해석을 막으려고 의무가 아니라고 규정한 문서가 따로 발표됐는데도 미국 쪽에선 의무라는 표현을 거듭 쓰고 있는 셈이다.

이 논쟁은 현실 외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대통령실 고위 당국자의 말이 맞다면 한국은 대만 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협의에 응하지 않을 선택권을 갖는다. 미국의 주장대로라면 협의장에 불려나와 미·일이 쏟아내는 여러 협력 요청에 답해야 한다. 대만 사태에 한국이 직접 연루될 위험이 극적으로 커지게 되는 셈이다.

3국 연합 군사훈련 확대 계획도 비슷하다. ‘캠프 데이비드 정신’은 “3자 훈련을 연 단위로, 훈련 명칭을 부여하여, 다영역(multi-domain)에서 정례 실시”한다고 했다. 일본까지 결합하는 훈련을 기존 한-미 연합훈련 수준으로 본격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런데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정상회의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중·지상·해양·수중·사이버·기타 모든 영역(all domains)에서 다년간의 군사훈련 계획을 약속”했다며 “이는 단지 1년 또는 3년간이 아니라 매우 광범위한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일은 공해에서 이전 정부도 하던 미사일방어(MD) 훈련은 물론 대잠수함 등 여러 해군 연합훈련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육군 연합훈련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훈련은 실전을 상정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일본 육상자위대의 한반도 전개라는 극히 민감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아가 공동 기자회견에서 3국 정상들과 외교·국방 장관 등의 정례 회담을 “단지 1년이나 그다음해만이 아니라 영원히 개최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역시 합의 문서에 없는 내용이다. 앞서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한·미·일 3자 관계를 뒤로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게 이번 정상회의의 목표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합의 문서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이 아닌 정치적 선언문에 불과하고, 그 안에서도 회담의 영구적 참여를 약속한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합의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는 말의 취지는 한국에 진보 정권이 들어서거나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 교체는 대권 후보가 내세운 외교 정책 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택이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상들의 ‘정치적 합의’에도 담기지 않은 내용을 의무화·영구화하며 자신들의 외교적 업적을 극대화하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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