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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니키 헤일리 바람 심상찮다…‘트럼프 독주’ 판 흔들까

등록 2023-12-21 09:00수정 2023-12-21 16:37

김동석의 미국 대선 돋보기
②니키 헤일리는 트럼프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왼쪽)가 지난 12일(현지시각)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자신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크리스 수누누 뉴햄프셔 주지사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맨체스터/AP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왼쪽)가 지난 12일(현지시각)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자신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크리스 수누누 뉴햄프셔 주지사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맨체스터/AP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안으로 니키 헤일리가 급부상하고 있다.

공화당 후보를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막강한 찰스 코크가 이끄는 슈퍼 정치행동위원회(PAC, 정치자금단체)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이 니키 헤일리의 손을 공개적으로 들었다. 지난 10월 중순 이후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3~4회씩 맨해튼 금융가에서 헤일리 후원 모금행사가 열리고 있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공화당 유권자들이 이번 경선에서 헤일리로 쏠리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늘고 있다. 지난 12일엔 크리스 수누누 뉴햄프셔 주지사가 트럼프의 대안으로 헤일리를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수누누는 3선에 80%의 지지율을 기록해 전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주지사다. 뉴햄프셔는 공화당의 프라이머리가 처음 실시되는 주라는 점도 중요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독주하는 듯 보였던 미국 공화당 선거전에서 왜 헤일리가 주목받으며 떠오르고 있을까.

공화당 내부에서 트럼프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커진 것이 원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 대선 결과를 부정하고 심지어 이듬해 1월6일 광적인 지지자들을 동원해 연방의사당을 공격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트럼프 지지층은 분노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면서 중앙정치권(미 의회)을 공격하고 있다. 트럼프 정치를 거부하는 하원의장을 강제로 끌어내리며 의회 기능을 마비시켰다.

백악관 재진입을 노리는 트럼프의 캠페인은 첫번째 도전 때보다 훨씬 치밀하다. 그는 지지층의 절대다수를 구성하는 외곽지역의 백인들을 의식해 이민 반대 계획의 세부 사항을 공개했다. 2017년 1월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내세운 ‘무슬림 금지’보다 더 가혹한 내용이다. 군사 예산의 일부를 사용해, 이민서류 미비자들을 모아 대규모 수용소에 구금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의 유력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고안한 계획인 ‘프로젝트 2025’의 세부 내용을 보면, 트럼프가 승리한 뒤에 트럼프의 정적들을 구금하고 법무부의 독립을 제한하고 반란법이 정권유지의 도구로 무기화될 것을 예고한다. 최근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독재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취임한 날 꼭 하루만 독재를 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상대를 ‘해충’이라고 표현하면서 증오심을 내비쳤다.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트럼프 정치는 예측 불가능의 불확실성의 공포다.

그런데 트럼프의 정치기반은 미국 공화당이 아니다. 저학력 저소득계층의 반사회 심리를 선정적으로 선동해서 정치세력화했다. 공화당과 이 세력을 연합해 백악관을 접수했다. 전통적인 공화당 주류는 트럼프의 강력한 정치력을 활용하려 했지만 오히려 당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트럼프를 대변하는 극우파 정치인들이 연방의회에서 보여주는 행태가 미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2024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내부에서 트럼프의 귀환에 대한 우려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독주를 하고 있지만 트럼프가 아닌 후보를 만들려는 공화당 내의 움직임이 점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안 된다고 가장 강하게 목소리를 내온 후보는 전 뉴저지 주지사인 크리스 크리스티다. 크리스티가 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트럼프를 경선에서 탈락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는 있다. 지난 6일 공화당 4차 후보토론회에서 트럼프를 공격하는 한편 트럼프의 유일한 경쟁자로 떠오른 헤일리를 옹호하는 역할을 했다. 이 토론회를 본 공화당의 원로들과 기부자들은 크리스티에게 헤일리를 공식 지지하고 후보에서 사퇴하라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경선에서 독주하는 후보를 이런 식으로 따라잡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4월 말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칼리 피오리나는 테드 크루즈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하고 사퇴했다. 그 대가로 크루즈는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피오리나를 지명했다. 당시 크루즈는 선두인 트럼프를 바싹 따라붙고 있었지만,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만일 더 늦기 전인 지금 크리스티가 헤일리를 지지하고 후보를 사퇴한다면, 반트럼프 투표자들이 경선장으로 몰려나오게 만들 수 있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전통적인 공화당 기부자들은 이미 헤일리를 위한 선거자금 만들기에 나섰다. 2016년과 2020년 트럼프를 지지하고 후원했던 기부자(기업)들이 일제히 헤일리 쪽으로 쏠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헤일리가 양자 구도로 경쟁하면 헤일리가 승리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헤일리는 196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한 인도 펀자브주 출신 시크교도 이민자의 딸이며 딥 사우스의 중심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두번이나 주지사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20대에 가족이 운영하는 중소 의류기업을 맡아 경영하면서 지역 소상인들을 조직했고, 여성 기업인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2010년 3선의 주 하원의원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에 당선돼 미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 기록을 세웠다. 주지사 시절 그는 보잉사의 B787 여객기 생산라인, 볼보·벤츠 자동차 공장, 세계적인 신생 에너지 기업들을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유치하는 등 경제 발전 성과도 냈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가 지난 7일(현지시각) 뉴햄프셔주 킨주립대학에서 학생과 지역 주민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킨/EPA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가 지난 7일(현지시각) 뉴햄프셔주 킨주립대학에서 학생과 지역 주민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킨/EPA 연합뉴스

주지사 시절 그의 정책은 공화당 주류의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온건 보수주의 노선에 충실했다. 트럼프 같은 극우 포퓰리즘과는 선명한 차이가 있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보수주의자다.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백인 우월주의자가 흑인 교회에 난입해 10여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주의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00년 이상 주 청사에 펄럭이던 ‘남부연합기’를 철거했다. 남편 마이클은 그녀가 주지사로 있을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장교로 근무했고, 현재는 아프리카에서 파병장교로 근무하는 현역 군인이다. 헤일리는 2016년 대선 당시 마코 루비오와 테드 크루즈를 지원했다가, 트럼프가 후보로 확정된 뒤엔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다. 트럼프는 첫 국무장관을 니키 헤일리에게 제안했지만 그녀는 사양하고 유엔대사가 됐다. 전문가들은 국제관계 경험을 쌓고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리려는 헤일리가 그때부터 트럼프 이후를 준비했다고 본다. 헤일리는 만 2년 동안 유엔대사로서 트럼프의 정책을 충실히 대변했다. 트럼프가 선언한 파리기후협정 탈퇴 작업을 했고, 유엔 인권이사국에서도 탈퇴했다. 북한에 억류되었다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며 유엔에서 북한 인권을 성토하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지난 2월 출마를 선언할 때에도 웜비어 가족을 초청했다. 2017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6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북한 제재 강화에 앞장섰다.

공화당 후보 토론회에서 헤일리가 내놓는 메시지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과감하게 트럼프를 비판하면서도 트럼프의 긍정적인 유산을 살려나가려 한다. 유권자에게 설득력이 있다. 전문가들은 헤일리에게 강력한 트럼프 공격수인 크리스티가 가세하면 충분히 트럼프와 경쟁할 수 있고, 내년 3월5일부터 트럼프의 재판 일정이 본격 시작되면 그를 넘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1월15일 치러지는 아이오와 코커스가 중요 분수령이다. 여기서 헤일리가 2등으로 올라선다면 트럼프의 대항마로 나설 가능성이 결정적으로 높아진다. 트럼프 대안으로 기대를 모았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지율이 하향세이지만, 헤일리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프라이머리가 처음으로 실시되는 뉴햄프셔와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헤일리의 안방이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헤일리가 2등을 한다면, 이어서 치러지는 뉴햄프셔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급속 상승할 수 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밋 롬니, 2016년엔 트럼프, 2020년엔 바이든이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2등 또는 3등을 한 뒤 상승세를 만들어 결국 후보가 되었다.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에 반대하는 구심점이 만들어지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성장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약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헤일리가 디샌티스를 제치고 2등을 하면서 반트럼프의 중심으로 확고히 등장할지가 미국 경선 초반전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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