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28일 뉴햄프셔주 노스콘웨이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노스콘웨이/AFP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항마로 떠오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노예제 관련 발언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극우적이지 않다는 평가 속에 추격의 발판을 마련해가는 중이었는데 중도층에게 실망을 안기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헤일리 전 대사는 27일 뉴햄프셔주 벌린에서 열린 유권자들과의 토론 행사인 타운홀 미팅에서 한 참석자에게 “남북전쟁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쉽지 않은 질문”이라며 “남북전쟁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어떻게 운영될지에 관한 것이고, 자유에 대한 것이고, 또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언제나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고 사람들의 권리란 무엇인가가 문제가 된다”고 했다.
이에 질문자는 “2023년에 이 질문에 노예제를 뺀 대답을 듣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헤일리 전 대사는 “내가 노예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기를 원하냐”며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이런 문답에 미국 언론에서는 헤일리 전 대사가 부적절한 인식을 드러냈다거나 큰 말실수를 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의 원인으로 노예제를 인정하느냐 여부는 정치적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류 역사학계가 노예제를 전쟁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할 뿐 아니라, 이를 부정하는 것은 남북전쟁을 북부의 남부에 대한 부당한 무력 탄압이라고 보는 남부의 극우적 시각과 이어진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헤일리 전 대사에게 질문을 던진 이도 그런 취지로 물은 것이다.
역사 인식 논란과 관련해 헤일리 전 대사의 배경도 ‘의심’을 부추긴다. 그는 인도계라 유색인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노예제의 중심지였고 남북전쟁의 첫 총성이 울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출신인 그는 인종 문제와 관련해 보수적 입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헤일리 전 대사는 자신의 발언에 부정적 반응이 쏟아지자 28일 라디오 인터뷰와 행사 발언을 통해 “물론 남북전쟁은 노예제에 관한 것이었다”며 수습을 시도했다. 또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모두에게 중요하다”, “노예제는 미국의 얼룩이다”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남북전쟁의 원인에 대한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민주당원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설화는 갈 길 바쁜 헤일리 전 대사에게는 악재일 수밖에 없다. 문제의 발언이 나온 곳은 그가 경선전에서 초반 분위기를 띄우려고 공을 들이는 뉴햄프셔주다. 공화당 경선은 다음달 15일 아이오와주에서 시작하고, 23일에는 뉴햄프셔주에서 두 번째 경선이 진행된다. 최근 뉴햄프셔주에서 그의 지지율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4%포인트까지 따라잡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헤일리 전 대사가 아이오와주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크게 뒤질 것으로 보이지만 뉴햄프셔주에서 선전한다면 ‘트럼프 대세론’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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