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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부시 전 외교정책 3인방 대립 재연?

등록 2006-05-01 19:44

파월 “럼스펠드, 내 조언 무시”
라이스, 당시 상황 변명
럼스펠드 반응 안보여
콜린 파월(사진 위)과 도널드 럼스펠드(사진 아래), 그리고 콘돌리자 라이스(사진 가운데). 조지 부시 1기 행정부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결정했던 고위관료 3명이다. 국무장관이던 파월과 국방장관이던 럼스펠드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둘 사이에 끼인 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던 라이스였다.

파월과 럼스펠드가 가장 격렬하게 맞붙은 사안은 이라크와 북핵 문제였다. 라이스는 갈등을 조정해내지 못했다. 2003년 9월 〈워싱턴포스트〉는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라인을 평가하면서 “라이스 보좌관은 정부부처들을 합의로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현 정부의 정책조정 기능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부시 2기 행정부에서 세사람의 처지는 바뀌었다. 파월은 정부에서 나갔고, 그 자리를 라이스가 이어받았다. 럼스펠드는 여전히 국방장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세사람간 대립과 갈등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파월 전 장관은 4월30일 영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1기 행정부 때 럼스펠드 장관에게 이라크 주둔병력을 늘리라고 조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부시 대통령 앞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토미 프랭크스 중부군사령관에게 미군 병력이 충분치 않다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다. 나는 단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대통령에게 말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라크 정책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1991년 걸프전 영웅인 파월 전 장관의 이번 비판은 부시 행정부에게 뼈아픈 일이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에이비시(ABC)방송〉 등에 출연해 당시 결정을 애써 옹호했다. 그는 “파월 장관의 발언을 기억하진 못한다. 그러나 그때는 이라크 임무 성공을 위한 수많은 논의가 있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게 검토가 됐지만, 대통령은 결국 이라크 침공계획을 수립한 군 지휘관들의 (병력이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병력증강 주장을 일축했던 럼스펠드 장관은 아직 반응이 없다. 그러나 1기 행정부에서 파월을 눌렀던 럼스펠드가 이번엔 파월의 비판에 대적하기 매우 어려워 보인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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