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멕시코시티 선관위 사무실 바깥에 게시된 투표결과를 어린이들이 손으로 짚으며 쳐다보고 있다. 멕시코시티/AP 연합
오브라도르 방송나와 “개표 조작 분명”
칼데론쪽,제도혁명당과 ‘연립정부’ 밝혀
칼데론쪽,제도혁명당과 ‘연립정부’ 밝혀
예비개표가 거의 완료된 3일 저녁(현지시각), 멕시코 유력방송사인 의 뉴스 프로그램에 펠리페 칼데론 국민행동당 후보의 모습이 비쳤다. 그때 멕시코 중앙선관위 웹사이트는 ‘국민행동당 칼데론 후보 36.38%, 민주혁명당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 35.34%’라는 개표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개표율은 98.4%. 35만∼40만표 차이다. 더이상 역전은 불가능해 보였다.
텔레비전에 나온 칼데론 후보는 차분해 보였다. 그는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 이 결과는 나의 승리가 아니다. 국민들의 승리다. 이번 선거는 매우 민주적으로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러졌다. 멕시코는 새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고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국민들의 단합을 강조했다. “멕시코는 대선 과정의 차이를 뛰어넘는 단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국가적 화해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해야 할 때다.”
집권 국민행동당 지지자들은 예상 밖 승리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비록 중앙선관위 공식 발표가 나오는 수요일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이미 지금 드러난 결과만으로도 상황이 바뀌진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엿보였다.
칼데론을 지지했다는 50대 회사원 미겔 앙헬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번 선거는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높은 투표율을 보인 선거다. 나는 국민행동당에 한번 더 6년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경제인이나 기업인들은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이 아직 완전히 진정된 건 아니다. 칼데론 후보가 대선 승리를 선언한 뒤에도 텔레비전 토론회엔 칼데론 후보와 오브라도르 후보 쪽 대변인들이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개표 과정에서의 부정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오브라도르 후보는 이날 밤 중앙선관위 웹사이트의 개표상황을 기록한 종이를 들고 텔레비전 앞에 섰다. “지금까지 진행된 개표는 많은 점에서 불공정했다. 제대로 유효 투표수를 세지 않았다. 처음 개표결과에 비해 10% 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조작한 게 분명하다.” 수천명의 지지자들은 비가 쏟아지는 밤인데도 시내 민주혁명당 당사 앞에 모여 한 목소리로 재검토를 외쳤다.
오르바도르 지지자들의 격앙된 분위기는 당사 앞에서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열혈 오브라도르 지지자라고 밝힌 엔리께 피델은 “개표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 무언가 조작된 느낌을 준다. 6개월 내내 높은 지지도를 보였던 오브라도르가 패배할 수는 없다. 오브라도르가 진다면 우리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관위의 공식 개표결과가 이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칼데론 후보의 측근들은 방송과 신문 인터뷰에서 거국적인 정부 구성을 강조했다. 칼데론 후보의 보좌역인 아투로 사루크한은 “오직 연립정부만이 국가를 전진시키는 데 필요한 합의와 대화와 포용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들은 칼데론 후보가 과거 70여년간 장기집권을 했던 제도혁명당과 연정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선에서 21%의 지지로 3등을 한 제도혁명당의 대선 후보 마드라소 역시 “이번 선거는 불법이다. 지금 나오는 발표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칼데론 쪽 진영 내부에서도 “국민적 이미지가 나쁜 제도혁명당과의 연정은 실책이 될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칼데론 후보의 앞날은 여전히 험난해 보인다.
멕시코시티/정지은(자유기고가) mikylatin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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