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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부시, 거부권은 안쓰지만…“삼권분립 위협”

등록 2006-07-24 18:48수정 2006-07-24 22:50

법률안 800조항 보류 ‘사실상 거부권’…클린턴의 10배
미 변협 “의회·법원 권리 침해”…백악관 “합법적 권한”
‘37 대 1’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이 재임 중 행사한 거부권 횟수다. 클린턴은 집권 8년 동안 의회 법률안을 37번이나 거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단 한번뿐이다. 지난주 상·하원이 의결한 줄기세포 연구지원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게 유일하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거부권을 이렇게 적게 쓴 사례는 드물다. 이건 부시가 의회와 아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일까.

수치와 현실은 다르다. 부시 대통령은 거부권을 쓰지 않지만, 법률안 일부 조항을 집행보류하는 지침을 남발하는 식으로 사실상 의회 법률을 거부하고 있다고 24일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이런 행태는 의회와 법원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고 삼권분립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미국변호사협회는 지적했다.

미국변호사협회 태스크포스 팀은 보고서에서 “부시 대통령이 집행을 보류한 법률 조항은 지금까지 모두 800여개로, 과거 대통령들이 보류했던 법률 조항 숫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밝혔다. 마이클 그리코 변호사협회장은 “대통령의 법률안 ‘서명지침’이 견제받지 않고 행사된다면 우리는 헌법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률안 ‘서명지침’(signing statement)이란 대통령이 의회 법률안에 서명을 하면서 특정 조항의 집행 범위를 해석해 명확히 규정한 지침을 말한다. 다나 페리노 백악관 부대변인은 “건국 초기부터 역대 대통령들은 ‘서명지침’을 활용해 왔다. 부시 대통령은 합법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시의 서명지침은 자신의 정책방향과 맞지 않는 법률 조항들을 선별해 정치적 의도에서 집행 보류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의회에서 입법된, 미국 수용시설에 구금된 테러용의자에 대한 고문과 비인간적 대우를 금지하는 법안이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의 강한 압력에 밀려 결국 이 법안을 수용했지만, 조사기법에 제한을 두는 조항은 서명지침을 활용해 보류했다.

또 애국법(패트리엇법)에 따라 수집한 정보의 공개 조항과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률 조항, 콜롬비아 내전에 미군 개입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 등을 이런 방식으로 사실상 사문화시켰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0년 취임 이후 110번의 서명지침(800여개 조항)을 내려, 재임 8년간 80번의 서명지침을 내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기록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미국변호사협회는 “대통령의 헌법상 의무는 위헌 판결이 날 때까지 서명법률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말하는 것(서명지침)이 헌법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박찬수 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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