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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국 공립학교의 부익부 빈익빈

등록 2006-12-27 10:31수정 2006-12-27 14:51

강성만 기자의 미국고교, 미국대학 그리고 미국대입
강성만 기자의 미국고교, 미국대학 그리고 미국대입
강성만 기자의 미국 고교, 미국 대학 그리고 미국 대입⑥
공립학교라도 부자 마을과 가난한 마을은 천양지차
지방자치 시스템때문
미국 교육은 한국에 적잖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나 교직원노동조합이나 학부모단체 모두 그들의 목소리를 높일 때 예로 드는 것이 미국의 사례다. 교육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전문대학원 시스템이나 수능의 문제은행식 출제, 자립형사립고 정책 등이 바로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배경막이 된 사례다.

전교조가 교사 노동3권을, 학부모 단체들이 학부모들의 학교 운영 참여에 목소리를 높일 때도 늘 미국이 등장한다. 교사평가와 관련해, 교육부는 미국의 한 지역에서는 학부모와 교사까지 평가에 참여한다고 제시했고, 교원단체들은 미국에서도 지엽적인 사례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아직까지 우리 의식 속에 ‘미국 교육은 선’이라는 생각은 확고한 듯하다.

인종과 소득에 따른 교육성취 차이 개선 대책 없어

미국에서 단 1년 체류한 상황에서 미국 교육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미국 교육도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한국 교육이 질과 양의 측면에서 서서히 발전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제는 미국에 대해서도 추종의 관점보다는 역지사지의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미국 교육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인종과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 성취의 차이가 현저함에도 이를 극복할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흑인과 히스패닉이 밀집한 저소득계층 지역의 고교에서는 중도탈락 비율이 50%를 웃도는 등 학교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당국 못믿겠다, 독립학교 설립 목소리 커져

이들 학교에서 집단 패싸움 등 폭력적 일탈 현상도 심심찮게 현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들 학교의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교가 이처럼 파행 운영된다면, 차라리 차터 학교로 전환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차터 학교는 재원은 정부가 지원하되, 운영은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대안적인 학교 시스템이다.

현재 캘리포니아 지역 초중등 교육의 핵심 이슈는 ‘공립학교냐 아니면 차터학교냐’다. 이 논쟁은 한국에서 자신들의 자녀가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분리시켜달라’는 일부 중산층 학부모의 문제의식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저소득 지역의 열악한 교육 현실을 정부에 맡겨서는 도저히 개선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나서 개선해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때문에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차터 학교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독립학교 본질은 ‘공공성의 강화’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

즉 미국에서 차터학교의 본질은 ‘공공성의 강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당국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의 한계이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방자치가 고도로 발달된 국가다. 뉴욕의 경우, 시장이 교육감을 직접 임명하고 교육 현안을 직접 챙긴다. 로스앤젤레스는 최근까지 직선으로 뽑힌 교육위원들이 교육감을 임명하지만 현 시장은 직접 교육감을 임명하는 쪽으로 제도 개선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교육이 지방 단위의 구획을 통해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많다. 집값이 비싸지 않아 재산세를 많이 거둘 수 없는 저소득 밀집 지역의 경우, 교육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치안이 불안한 캄튼(지난해 살인사건이 70건을 초과)의 경우, 세원 부족으로 경찰조차 늘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열악하기 짝이 없는 학교 시설 개선 등에 돈을 더 많이 쏟아 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소득 지역, 교육여건 개선할 수 있는 재원 없어

하지만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1971년 주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모든 학생에 대해 똑같은 재정지원을 한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즉 각 지역에서 소득, 판매세를 거둬 주로 올려 보내면 학생 수에 따라 각 지역에 돈을 내려 보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예산 배분방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미국 도시들은 지역에서 걷는 재산세가 바로 그 지역 학교의 교육 예산으로 쓰인다. 이 때문에 뉴욕과 같은 대도시 인접 교외 지역의 풍족한 도시에서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공립학교의 재정 형편도 풍족한 편이다. 캘리포니아주 역시 학생당 동일예산 원칙을 세우고 있으나 기부금 모금과 학부모의 자원봉사 문화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예산을 쓰더라도 학교 시설과 운영 실태는 크게 차이가 난다.

학부모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중산층 밀집 지역에서는 갖가지 명목의 기부금이 넘쳐나고 상당수의 학부모들은 자기 시간을 할애해 학생 보충 지도나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하는 등의 자원봉사로 학교에 기여한다. 또 시의 재정이 풍부할 경우, 추가로 학교에 돈을 지원해 학생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도록 한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파를로스 버디스의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정규 수업 시간에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쉽게 배울 수 있는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가 예산을 들여 개설한 프로그램이다.

지역에 따라 교육시설과 프로그램 큰 차이

미국의 공립 초등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도꼭지가 너덜거리고 쓰레기로 넘쳐나는 저소득 지역 학교에 비하면, 학교 시설도 크게 차이가 난다. 이처럼 공립학교에서조차 시설과 교육프로그램의 측면에서 차이가 현저하게 벌어져 있는 현실은 교육격차의 해소를 통한 사회통합이라는 과제가 실제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진보적인 교육학자들조차 다른 지역의 세금을 현 수준 이상으로 열악한 지역의 교육여건 개선에 쓴다는 개념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주민의 동의가 필요한 매우 어려운 과제로 그들은 보고 있다.

대학에서 수학 과학 전공자들, 교직 외면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교사들의 자질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 자격증을 얻기 위한 전문 대학원 코스를 1년 마쳐야 한다. 고교 졸업 뒤 최소 5년을 고등교육 기관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과 수고에 걸맞은 대접을 교사들이 받고 있느냐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한 교수는 “70년대에는 똑똑한 여학생들이 마땅한 취직자리를 찾지 못하고 교직으로 몰렸으나 지금은 똑똑한 여학생들도 절대 교직으로 진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자들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보수가 좋은 직종으로 몰려간다는 것이다.

미국 교사들의 급여는 대개 4만~6만 달러 수준이다. 한국에 비해 2배 가까운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만족할 만한 급여라고 할 수 없다. 때문에 대학에서 수학과 과학을 전공한 ‘머리 좋은’ 자연계 전공 학생들이 교사자격증을 따기 위한 대학원 과정에 등록할 리가 없다. 기업이나 연구소에 취업하면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비전공자가 버젓이 수학 가르쳐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에서는 10여년 이상 과학과 수학 교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비전공자가 복수로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기자가 거주하던 지역 중학교에서 수학 교사가 산휴에 들어가자 수학 교사 자격증을 가진 임시 교사를 찾지 못해, 이 학교에 사회 교사가 대신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영어 구사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인도 출신의 수학, 과학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외국인 출신 교사들을 폄하하려고 하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마땅한 교직 희망자조차 배출하지 못하는 국가의 교육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지 여러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력인사들은 사립학교 출신…공립학교 해법 찾기 어려워

미국 학자들은 똑똑한 학생들이 교직을 꺼리는 이런 현실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전쟁에 쏟아 붓는 데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육을 개선시키려면 교육에 투자해야 하는 데, 전쟁에 그처럼 돈을 쓰고 있는 데 어떻게 미국 교육이 좋아지겠느냐는 항변이다.

“세금은 인상하지 않으면서 전쟁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교육예산이 태부족이다. 정치인들 자식들은 부모가 다닌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다. 교육예산 확보에 그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지프 브라운 교수의 지적이다. 사회 유력 인사들이 공립학교를 나온 나라와 미국처럼 대부분 사립학교 출신인 국가 사이에는 이처럼 선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강성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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