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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나쁜 한국인’ 묘사 미국 교재 ‘채택 저지’ 운동

등록 2007-01-17 14:52수정 2007-01-17 15:32

일제말기 한국인들이 일본 아녀자들을 위협하고 강간을 일삼았다는 내용의 미국 중학교 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대나무숲 저 멀리)와 한글판 ‘요코 이야기’. 연합뉴스
일제말기 한국인들이 일본 아녀자들을 위협하고 강간을 일삼았다는 내용의 미국 중학교 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대나무숲 저 멀리)와 한글판 ‘요코 이야기’. 연합뉴스
일본 패망기 한국인을 가해자로 몰아 ‘역사 왜곡’
일제 패망기 한국인을 가해자로 몰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일본인의 실화소설이 미국 6~7학년 중학교 영어교재로 사용되고 있어 한인 학생·학부모들을 중심으로 교재 채택 저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인과 결혼해 메사추세츠주에 살고 있는 일본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가 1986년에 쓴 <대나무 숲 저멀리서(so far from the bamboo grove)>는 보스턴과 뉴욕, 로스앤젤레스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어린이들의 영어교재로 사용돼 ‘착한 일본인, 나쁜 한국인’이란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 사실이 아닌 허구

책은 1945년 당시 11살이었던 요코 가와시마가 어머니·언니와 함께 함북 나남(청진시)에서 서울, 부산을 거쳐 일본에 정착하기까지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요코 가와시마는 자신의 아버지는 만철에서 근무한 고위관리로 전후 6년간 시베리아에서 복역했다고 밝히고 있다.

‘실화’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45년 7~8월 미군의 북한지역에 대한 폭격으로 탈출을 시작했다고 되어 있고 △8월15일 서울까지 오는 길에 공산군의 무자비한 추적을 받았으며 △당시 조선인들이 보복을 위해 일본인들을 살해·강간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8·15 이전 미군의 한반도 공습은 없었고,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기 전까지 일본이 국내의 치안을 장악하고 있었다. 또 정작 제목에 나오는 대나무 숲은 함경북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저자가 자신의 얘기도 아닌 흘려들은 얘기를 짜맞추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 교재채택 저지 운동

이 책은 미 도서관협회의 권장도서로 선정돼 11살 미국 어린이들의 영어교재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메사추세츠주에 거주하는 요코 가와시마는 10년 넘게 이 지역과 전국의 학교들을 방문해 한번에 2천여달러의 사례금을 받고 ‘저자와의 대화’를 갖는 등 허구를 사실인 양 포장해 왔다.

지난해 9월 메사추세츠주 보스톤 인근 도버 셔본 학구의 한국인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교재채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10월30일 지역 교장과 교사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균형잡힌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기 힘들다”며 커리큘럼에서 이 교재를 제외시킬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일부 중학교 교사들이 “일종의 검열”이라며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이 시기를 보여줄 다른 생존이야기로 확장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지난 3일 도버 셔본 지역학교위원회는 애초의 결정을 번복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뉴욕주의 라이카운티의 사립학교인 데이스쿨은 한국계 학생이 문제를 제기하고 등교를 거부하며 항의하자 7학년 교과과정에서 이 책을 제외했다. 문제를 제기했던 학생의 아버지인 마키클 휴이는 “균형잡힌 전체의 그림을 보여주는 대신에 한국인들을 침략자로 그린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말했다.

■ 역사왜곡에 대한 시정은 계속돼야

미 도서관협회는 2000년 이래 학교 교재 4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나무 숲…>도 그 중 한권이다. 도서관협회쪽은 “각 커뮤니티들이 결정할 일이지만, 목록에서 제외해 토론을 막는 것보다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게 협회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메사추세츠주 다트머스의 프렌즈아카데미에서 6,7학년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스티브 왈라치는 <보스턴글로브>와 인터뷰에서 “다음 학기부터 이 책을 제외하기로 했다”며 “적어도 네 군데에서 강간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목이 나오는데, 이 책의 근본적인 잘못은 저자가 2차대전에서 일본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대인 대학살이나 2차대전의 주요사건에 대한 언급없이 나치 가족의 도주에 관한 책이 교과서로 읽힐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지영선 보스턴 총영사는 “미국 학교에서 이 책을 가르치는 건 한인 학생과 학부모들에 대한 일종의 인종차별이자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인 학부모들은 연방 교육부와 주 교육부에 정식 항의할 예정이고, 필요하다면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며 “영사관 차원에서도 연방 교육부와 주 교육부에 이미 항의서한을 발송했고, 미국 정치권과 언론에도 문제를 계속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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