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된 광부들은
아이 셋 키우려 초과근무 하다 갇히기도
아이 셋 키우려 초과근무 하다 갇히기도
13일(현지시간) 33명의 매몰 광부들 가운데 가장 먼저 구조된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는 두 살 터울의 동생 르낭(29)과 함께 사고를 당했다. 르낭이 형의 소개로 광산 일을 시작한 지 겨우 넉달째였다. 이들의 삼촌 알베르토는 <에이피>(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플로렌시오는 두 아이와 축구 경기를 하기를 좋아하는 스포츠맨이었다”며 “동생을 두고 먼저 나오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 정부는 뜻밖의 상황이나 갑작스런 스트레스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기준에 따라 33명 가운데 두번째로 계급이 높고, 비교적 건강한 그를 첫 구조자로 낙점했다.
광부들의 인생사는 남미의 최대 부국이면서도 15%에 이르는 빈곤률과 씨름하고 있는 칠레 사회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광부들은 대를 이어 광업에 종사하거나 직업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갱도 생활을 받아들여야 했다. 광부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63살의 마리오 고메즈는 12살 때부터 광부 일을 해왔고, 11월 은퇴를 앞두고 사고를 당했다. 구조 현장에 꾸려진 가족들의 거주지인 ‘희망’ 캠프에서 대변인 역할을 도맡아 온 다리오 세고비아의 누이 마리아는 “오빠가 광산일이 너무 위험해 다른 일을 구하려 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며 “3개월 전에 다른 직장서 해고된데다 아이가 셋이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달에 45만페소(930달러)를 벌었고, 사고 당일 근무 시간이 아닌데도 초과 근무수당을 벌기 위해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그의 아버지도 일주일 동안 광산에 갇힌 경험이 있으며, 두번의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가난한 광부들은 갱도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업을 진행했다. 광부들은 갱도에서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소리를 ‘광산이 운다’고 표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1일 “최근 금과 구리 같은 1차산품 가격이 올라 칠레에서는 작고 영세한 광산에서 위험한 채굴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산 안에서 기계를 다뤘던 알렉스 베가 살라자(31)는 지하에서도 빚 걱정을 해 부인 제시카가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사고는 지상에 남은 사람들과의 사랑을 더 강하게 만들기도 했다. 갱내 보수 작업 담당이었던 에스테반 로자스(44)는 25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에게 “나오는 대로 웨딩드레스를 사서 결혼하자”고 청혼했고, 굴착 인부인 클라우디오 예네즈(34)도 돌아오자마자 여자친구 크리스티나 누네즈와 결혼할 예정이다. 아리엘 티코나(29)는 지난 9월14일 ‘희망’이라는 이름이 붙은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지하에서 들었다. 31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오며 부인 릴리아나와 4명의 딸을 낳은 고메즈는 부인에게 애절한 사랑을 고백해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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