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교수(정치학)가 지난 7일 미국 조지아주 애선스에 있는 조지아대 세계문제연구소 연구실에서 북-미 관계의 미래와 한반도 평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 세계문제연구소 제공
한겨레가 만난 사람
‘북-미 관계 평화설계자’ 박한식 교수
‘북-미 관계 평화설계자’ 박한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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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때처럼 충돌하진 않겠지만
미국과 부드러운 관계는 아닐 것 -현재 동북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북한 핵개발을 빌미로 미국이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고, 주변국의 군비 확장이 진행되는 것 같다. “미국은 중국을 두려워한다. 자기 나라의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시진핑이 들어서면 군비확장을 할 것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을 빌미로 일본은 우익이 일어나고 군국주의화 움직임이 있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은 돈도 있고 기술도 있으니 더 군사화에 나설 것이다. 그러면 손해는 우리다. 우리를 위해서도 북한이 핵개발을 중지해야 한다. 극동에 군비경쟁이 일어나면 결국 일본과 중국이 무기 대국이 될 것이다. 민족의 원대한 중흥을 위해서 한국 국내 정치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지만 대외·대북 정책만이라도 현명하게 했으면 좋겠다.” 박 교수는 북-중 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는 “10년만 이 상태로 가면 중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모두 점령해 버릴 것”이라고 했다. “이건 북한이 선호해서 그런 게 아니다. 북한은 경제 다변화를 원한다. 그런데 유엔과 미국의 제재로 못하게 돼 있다. 북한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 위치에 처하게 되는 것은 북한은 물론이고 남한·미국에도 좋지 않다.” 그는 그런 만큼 59년째 지속되고 있는 정전협정을 하루빨리 평화협정으로 대체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미국 조야에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북한과 미국이 글로벌 비핵화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오바마 행정부 2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미국 역대 대통령을 보면 1기 때는 여론을 많이 의식한다. 그러나 2기 때가 되면 역사의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 오바마도 자기 집념을 정책으로 밀고 나갈 거다. 내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후보 시절에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비핵화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닿는 선을 통해서 북한을 글로벌 비핵화의 동반자로 초청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북한도 기꺼이 할 거다. 제일 먼저 핵강국이 된 미국과 마지막으로 핵강국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북한이 만나서 글로벌 비핵화를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2년 사이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평화협정도 빨리 될 것 같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체제의 북한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올해도 벌써 두차례나 방북을 했다. 그는 북한이 중국을 모델로 삼아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중·일에 군사대국화 빌미 주는
북한 핵개발 당장 중지해야
한국 차기정권 현명한 대처를 -최근 한 인터뷰에서 김정은 비서가 덩샤오핑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했나? “누구든지 정치가 안정되고 체제의 정통성이 확립되고 나면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법이다. 덩샤오핑도 문화혁명이 지나가고 혼란이 정리되고 나서 경제성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북한도 군사강국으로 만들어졌고 정통성과 체제 안정이 확립됐다. 또 한가지는 경제성장의 길이 보인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은 외부로의 개방을 강하게 밀고 나갔다. 그 길을 보고 추구했다. 김정은도 중국 모형이라는 길을 보고 추진하는 것 같다.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을 선두로 해서 외국의 투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도 보이고 있다. 물론 김정은이 덩샤오핑을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두 사람을 비교했을 뿐이다.” -김정은 비서가 경제개방을 추진할 만큼 강한 집념과 철학을 가진 것 같은가? “김정은 비서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 추구한 것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4월15일 군사 열병식 때 첫 연설을 했는데 그 현장에 있었다. 이제는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분명하게 했다. 군사적 안보와 사상·문화적 주체성이 공고해졌기 때문에 이런 것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이런 얘기를 했다. 의지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여러가지 대내외 압력으로 하지 못한 걸 젊은 지도자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변수가 달라졌다는 점을 봐야 한다. 우선 중국 변수가 달라졌다. 중국은 과거에는 하나의 대국으로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유엔 제재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식대로 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마지막에 3차례나 중국을 방문해서 그런 중국과 유대관계를 공고하게 해놨다. 북한 자체도 김정일 위원장 때만 해도 중국 모델을 답습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중국 모델이어야 되겠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변수도 김정일 위원장 때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집권 시기여서 북-미 관계 개선을 전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대로 가면 북한경제 중국 종속
북한도 미국 등 교역 다변화 원해
정전협정→평화협정으로 바꿔야 -김정은 비서의 북한 내 위치는 어떤가?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그 체제에서 공고한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항간에는 장성택이 실세라느니 리영호가 어떻다느니 하는데 그게 아니다. 모두 김정은 아래에 일사불란하게 모여 있다. 권력투쟁이 위에서 있다는 기미가 없고 밑으로부터 봉기 가능성도 없다. 그래서 국내에서 경제성장을 추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내년에 어느 정권이 들어서서 어떤 대북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나 대세는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리영호 대장은 숙청된 게 맞나? “리영호 대장은 자기 주위에 자기를 위한 세력이랄까 이런 게 전혀 없었다. 줄줄이 다 숙청되는 상황이 안 일어났다. 물론 세대 차이가 좀 있고 해서 늙은 사람들이 좀 물러서고 젊은 사람들이 들어서는 상황은 있었다. 리 대장은 나이가 70살이 넘어 그렇게 건강한 사람이 아닌데다 자기가 모시던 김정일 위원장이 타계를 하니 심리적으로도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자기 뜻에 맞지 않게 숙청돼서 밀려난 것은 아닌 것 같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활동을 하는 관계로 국내에는 그렇게 많이 소개돼 있지 않다. 어떻게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등 그의 개인사에 대한 질문을 했다. 김정은 “경제 성장 시켜야” 연설
외국 투자 받아들일 자세 보여
오바마 재집권땐 2년안 큰 변화 -북한에 50여차례 간 이유는 뭔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주에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시가전을 하는 그런 상황에서 태어났다. 창 가지고 배 찌르고 하는 굉장히 잔인한 백병전이었다. 할아버지 때 중국으로 이민을 간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해방 이후 귀향을 했다. 내려오는 가운데 피난민 수용소도 다니고 그러다가 평양에 와서 2년 정도 어릴 때 살았는데 38선이 생겼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38선을 넘어서 대구에 안착했다. 그런데 더 참혹한 6·25전쟁이 일어났다. 내가 정치학과에 간 게 도대체 정치가 어떻게 돼먹었길래 이러느냐, 어떻게 하면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느냐, 그걸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보니까 전쟁은 미국이 다 하더라. 그래서 미국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미국에 유학을 간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사회를 예방하느냐를 연구하고자 조지아대에 세계문제연구소도 만들었다. 1994년에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이 공격하면 전면전이 벌어져 우리 민족 수백만명이 죽을 텐데, 그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공격을 안 하도록 하는 게 내 목표가 되었다. 내가 평화조약을 얘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원래 북한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북한을 자주 가 사람들을 만나고 문제의식을 갖고 보고 하니까 뜻밖에 전문가가 됐다.” -앞으로 계획을 말해달라. “미국과 한국 대선이 끝나면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하는 비공식(트랙2) 회의를 내년 봄에 열 계획이다. 지난해 말에 개최한 것처럼 남북한과 미국 세 나라 인사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원칙적인 합의가 됐다. 이 회의에서는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새 길을 모색하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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