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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국 소도시 ‘위안부 소녀상’ 둘러싼 신경전

등록 2013-07-26 20:11수정 2013-07-26 21:49

박현 워싱턴 특파원
박현 워싱턴 특파원
현장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요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 건립을 놓고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재미동포들이 주도하고 미국 지방 정부·의회가 호응해 추진되고 있는 이 사업에 일본 쪽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인구 20만명의 소도시인 글렌데일시는 30일 공립도서관 앞에서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을 열 예정이다. 이 소녀상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건립된 소녀상과 크기와 모양이 똑같은 것이다. 외국에 이 소녀상이 세워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이 지역 재미동포 단체인 가주한미포럼(대표 윤석원)이 2년 전부터 지역 주민들과 시 정부·의회를 설득해서 이뤄낸 일이다. 제작비 3만달러(약 3300만원)도 재미동포들의 모금으로 마련했다.

이에 대해 일본 쪽은 로스앤젤레스 주재 총영사가 시 정부와 지역 언론에 위안부들에게 사죄와 위로금 지급 등을 이미 했다는 내용의 서한과 기고문을 보내는 등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소녀상 공청회에서는 100여명의 일본계 주민들이 몰려와 위안부는 “역사 날조”라거나 “매춘부”라고 주장하며 소녀상 건립에 반대했다. 한 재미동포는 “지금 여기서는 한-일 간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에서 위안부를 기리는 사업은 2007년 미국 연방하원이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이래 지방의회 차원의 결의안 채택과 지방정부의 기림비 건립이 곳곳에서 이뤄지는 등 점차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런 성과는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접근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재미동포들은 말한다. 한국에선 위안부 문제가 인권 유린의 문제이자 한-일 간 역사인식 및 외교 문제로 보는 게 당연하지만, 재미동포들은 이것이 한-일 간 외교 문제로 비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이는 미국 의회와 지방정부의 미묘한 특성에 기인한다. 이들은 ‘미국 시민’인 재미동포들이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특정 국가들 간의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상대방이 있는 만큼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으려 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재미동포들이 철저하게 미국 시민의 처지에서 접근하는 반면에, 일본 쪽은 한국의 시민단체나 정치인들이 개입됐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가 최근 자매결연 도시인 글렌데일시의 소녀상 건립에 자신이 큰 공을 세웠고, 제막식에 초청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지역 언론들이 보도했다. 글렌데일시가 이 사업을 자매결연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만큼 공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방정부가 공을 홍보하고 나서면, 재미동포들이 설 땅이 없어진다. 앞으로 일본 쪽이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빌미로 삼지 않을까 우려된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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