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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스티븐 김은 오바마 ‘기밀 누설과의 전쟁’ 희생양인가

등록 2013-10-10 21:01수정 2013-10-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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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쏙] ‘3년째 기밀 누설 혐의 고통’ 재미 핵 전문가 스티븐 김

2009년 FBI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나중에 오보로 판명된
‘북한 핵’ 뉴스의 제보자로 지목됐다

그에게 성급하게 혐의 씌우고
기자도 ‘간첩법 위반 공모’ 조사해
편파·과잉 수사 논란을 불렀다

핵·안보 전문가의 삶은 파탄나고
‘자유·인권의 나라’ 미국은 말한다
“아무 말 마라. 안 그러면 무너뜨린다”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또 다른 핵실험으로 대응할 작정이라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고위 관리들에게 경고했다. ……. 북한의 다음 핵실험은 중앙정보국(CIA)이 북한 내부 정보원들한테서 확보한 네가지 계획된 행동 중의 하나이다.”

2009년 6월11일 미국 <폭스뉴스>의 제임스 로젠 기자는 익명의 취재원한테서 이런 내용을 들었다며 기사를 온라인에 실었다. 당시는 북한이 그해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단행해 유엔 안보리가 제재 결의를 준비하던 때였다. 이에 대해 북한이 또다른 핵실험과 대포동-2호 미사일 발사 등의 추가 조처를 취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미 정보당국이 이런 첩보를 입수했다는 게 이 기사의 요지였다.

실제로 안보리는 그해 6월12일 제재 결의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 이후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을뿐, 이 기사에서 언급한 북한의 ‘계획들’은 실행되지 않았다. 결국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작성된 것으로 판명난 이 기사는 그러나 한 전도유망한 핵·안보 전문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 기사가 나간 지 석달가량이 지난 그해 9월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미 국무부의 한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국무부 검증·준수·이행국 정보총괄 선임보좌관이던 재미동포 스티븐 김(46·한국명 김진우) 박사의 사무실이었다. 미국 국립 핵연구소인 로런스 리버모어 소속이던 그는 2008년부터 국무부에 파견 근무를 하고 있었다.

미국 수사당국이 이 기사의 출처로 김 박사를 지목하고 수사에 나선 것이었다. 수사당국은 김 박사는 물론이고 로젠 기자의 컴퓨터와 전화통화·이메일 기록, 국무부 출입 정보를 그야말로 저인망식으로 수사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0년 8월 김 박사에 대해 국가안보 관련 기밀정보를 누설한 혐의로 ‘간첩법’(Espionage Act)을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은 기소장에서 “스티븐 김은 미국에 해가 되고 외국에 이롭게 사용될 수 있다고 점을 알면서도 기밀인 국가안보 정보를 의도적으로 기자에게 유포했다”고 적시했다. 재판부에서 혐의가 인정되면 최대 15년형을 언도받을 수 있는 죄목이다.

그때까지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하던 김 박사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가 혐의를 전면 부인하자 기나 긴 소송이 시작됐다. 이 소송은 현재 사건 발생 이후 4년, 기소 이후 3년을 넘기며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김 박사는 9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나는 미국 국가이익에 해가 되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며 “법무부가 왜 나를 지목해 불법행위를 했다고 기소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원 심리 기록과 김 박사 쪽의 주장 등을 살펴보면, 법무부의 수사에 몇가지 의문점이 제기된다. 첫째, 김 박사에 대한 편파수사 논란이다. 당시 로젠 기자가 보도한 정보를 본 미국 행정부 관계자는 95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보도하기 몇시간 전에 로젠 기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고위 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법원 기록을 보면, <폭스뉴스>의 백악관 출입기자는 당시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이던 데니스 맥도너 현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동료인 로젠 기자가 전화를 할테니 받아달라고 요청했고, 맥도너 비서실장은 “알았다”고 답신을 보냈다. 이 답신이 오고 나서 10분쯤 뒤에 로젠 기자는 맥도너에게 연결될 수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몇분간 통화를 했다.

그러나 나중에 맥도너는 수사당국에 당시 전화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이 전화는 당시 대테러 보좌관이던 존 브레넌 현 중앙정보국 국장과 당시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이던 마크 리퍼트 현 국방장관 비서실장에게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 두 사람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답변했다는 게 수사당국의 설명이다. 김 박사의 변호인인 애비 로웰 변호사는 이들에 대한 수사기록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고, 재판부는 최근 이를 받아들였다.

로웰 변호사는 “당시 그 내용을 미디어에 얘기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수사당국이 다른 가능성을 보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스티븐 김에게 초점을 맞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추적하기 어려운 고위직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스티븐 김이 추적하기가 쉽다는 점도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둘째, 무리한 수사 논란이다. 수사당국은 이 수사를 하며 이례적으로 기자의 전화통화와 이메일 내역까지 조사했다. 그리고 수색영장을 발부받으려고 로젠 기자를 “간첩법을 위반한 공모자”라고 적시했다. 미국에서 국가안보에 관한 기밀 정보를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간첩법을 적용한 경우는 그때까지 한차례도 없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이 이 사건을 <에이피>(AP) 통신에 대한 법무부의 수사와 함께 주요하게 다루자,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올해 7월 기자들의 통상적인 뉴스 취재 행위와 관련해 수색영장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내부 지침을 발표했다.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한 조사를 목적으로 발부된 영장일 경우 기자를 상대로 이를 이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 기준이 적용되면 로젠 기자의 전화와 이메일 등을 조사한다는 목적으로 제시했던 영장은 무효가 된다.

셋째, 간첩법의 무리한 적용이다. 간첩법은 애초 1차 세계대전 때인 1917년 주로 스파이를 처벌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은 국가안보 관련 기밀을 외부에 누설한 것에 대해서도 국익을 해치고 적을 이롭게 한다며 처벌 대상에 포함시켰다. 법무부가 김 박사에게 적용한 것도 스파이 조항이 아니라 바로 기밀누설 조항이다. 워싱턴에서는 고위 관리들이 기자들과 만나 자기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언론에 일상적으로 얘기하는 게 관행으로 돼 있다.

백악관은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관한 기밀 사항을 영화 제작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공화당 쪽은 이를 오바마의 재선용이라며 비판한 바 있으나 법무부는 문제삼지 않았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에선 국가안보에 관한 기밀누설을 적을 이롭게 한다고 처벌한다면 상당수 고위 관리들이 마찬가지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은 것은 인권을 중시하리라 여겨져온 오바마 행정부가 국가기밀 누설 행위에 대한 간첩법 적용을 어느 정부보다도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관련 법 조항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김 박사를 포함해 모두 7건에 이른다. 이는 역대 정부에서 기소된 사건 모두를 합한 것보다 많다. 사실상 사문화돼 있는 법 조항이 오바마 행정부 들어 되살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각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자신이 국가안보 문제에 대해 유약하리라는 기득권층의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이런 ‘기밀누설과의 전쟁’에 나섰다는 시각도 있다.

김 박사처럼 기밀누설 혐의로 2010년 기소된 토머스 드레이크 전 국가안보국(NSA) 간부는 지난해 10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무부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당신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는 애초 최대 35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2011년 검찰 쪽과 형량 협상에서 컴퓨터를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경죄에 해당하는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하는 대가로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드레이크는 누명을 벗었지만 막대한 소송 비용이 든 것은 물론이고 간첩법 위반이라는 딱지가 붙어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는 “나는 빈털터리가 됐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간첩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정확한 동기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김 박사의 경우 사실상 가정이 파탄났고 직업까지 상실했다. 막대한 소송 비용을 대느라 그동안 저축해놓은 돈을 모두 썼다. 그의 부모는 집까지 팔아야 했다. 이제는 재정이 거의 바닥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김 박사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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