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2016년 대선 유력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 AP 연합뉴스
힐러리 클린턴은 젭 부시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최근 대선 행보를 시작했다. 2016년 미국 대선의 지형을 결정지을 1라운드이다. 부시는 지난 13일 “2016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말했다가 수정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사실상 대선 행보를 시작했다. 그는 장모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고 공개하고, 형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예산을 방만하게 썼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젭 부시는 공화당의 ‘잠룡’ 중에서 가장 인지도와 지지도가 높다. 이는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와 형을 둔 부시 가문이라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으로서는 젭 부시의 본격적 등장을 기다렸다. 그의 등장은 클린턴의 가장 큰 약점을 중화해준다.
클린턴의 가장 큰 약점은 남편이 대통령을 했다는 거다. 부시 가문의 아버지와 아들이 대통령을 하더니, 이제는 클린턴 가문의 남편과 부인이 대통령을 하느냐는 대중적 거부감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미국에는 부시 왕조와 클린턴 왕조가 있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클린턴은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막판에 이런 대중적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클린턴이 본선에 나선다면 부시 가문의 업보까지 온통 뒤집어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젭 부시가 공화당 후보가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버지와 형에 이어 동생까지 대통령에 도전하는 부시 가문의 존재는 클린턴의 최대 약점을 가려준다. 가문 정치 기준을 놓고 봐도, 차악은 클린턴 쪽이다.
<엔비시> 방송은 지난 3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는 ‘왜 힐러리 클린턴은 젭 부시를 필요로 하나’라는 보도를 했다. 둘이 본선에 나설 경우, 부시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후보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 42%를 포함해 모든 정당 등록 유권자 60%가 부시가 과거 정책의 회귀를 대표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 24%를 포함해 모든 정당 등록 유권자 51%가 클린턴이 과거 정책의 회귀를 상징한다고 응답했다. 부시가 미래의 새로운 이념과 비전을 보여줄 것이라고 응답한 이는 27%였고, 클린턴에 대해서는 44%였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59%는 이번 대선에서 변화를 원한다고 답했다. 클린턴으로서는 부시와 맞붙으면 안정적 레이스를 펼칠 수 있으나, 다른 후보와 맞붙는다면 자신의 약점이 완전히 노출되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 클린턴은 공화당의 어떤 대선 후보 주자와 비교해도 지지율에서 앞선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주요 여론조사에서 최소 3%포인트에서 최대 22%포인트까지 앞선다. 다만,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폭스뉴스>의 조사에서는 젭 부시가 45%로 클린턴에게 1%포인트 앞섰다. 이 조사도 클린턴 쪽으로서는 고무적일 수 있다. 미국 보수층들이 즐겨 보는 <폭스뉴스>의 조사는 편향적 소지가 다분한데다,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젭 부시가 대세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젭 부시가 나올 경우, 형 부시의 실정을 그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것도 클린턴으로서는 호재이다. 젭 부시는 최근 한 여대생으로부터 “이슬람국가(IS)는 당신 형이 만든 것이다”라는 질타를 받는 등 형 부시의 유산 앞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클린턴-부시 구도의 약점을 아는 공화당 쪽으로서도 고민은 깊다. 보수적인 라디오쇼 진행자 러시 림보는 “2016년 대선에서 이상적이고 완벽한 티켓은 클린턴-부시”라고 조롱하는 등 젭 부시가 나설 경우 필패라고 분석했다. 공화당에 계륵인 젭 부시의 행보는 2016년 미국 대선의 최대 변수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